《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황제는 만세, 제후는 천세?

황제는 만세, 제후는 천세?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만세와 천세의 차이

1909년 대한제국 시절, 김구는 자기에게 부르는 ‘만세’ 소리를 듣고 기겁했습니다. 김구에게 있어 ‘만세’란 황제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황제의 신하인 군수는 웃으면서 요즘 같은 시대에는 친구와 만나고 헤어질 때도 만세를 부를 수 있다고 안심시켰습니다.

배천 군수 전봉훈의 초청을 받았다. 읍에 못 미쳐 오리정에 군내 각 면의 주민들이 나와서 등대하다가 내가 당도한즉 군수가 선창으로, “김구 선생 만세!”를 부르니 일동이 화하여 부른다. 나는 경황실색하여 손으로 군수의 입을 막으며 그것이 망발인 것을 말하였다. 만세라는 것은 오직 황제에 대하여서만 부르는 것이요, 황태자도 천세라고밖에 못 부르는 것이 옛 법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일개 서민인 내게 만세를 부르니 내가 경황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러나 군수는 웃으며 내 손을 잡고 개화시대에는 친구 송영에도 만세를 부르는 법이니 안심하라고 하였다. 김구. (1947). 〈민족에 내놓은 몸〉. 《백범일지 상》.

여기서 주목할 점은 만세(萬歲)와 천세(千歲)의 차이입니다. 중국의 역사서에서는 ‘천세’라는 말을 많이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반면 《조선왕조실록》에는 ‘천세’가 수백 회 나옵니다. 중국에서 황제의 관료들이 만세를 불렀다면, 조선에서 왕의 관료들은 천세를 불렀고, 조선이 대한제국이 되면서 비로소 군주에게 만세를 썼던 것입니다.

그런데 황제와 제후왕의 위계가 만세와 천세로 구별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요? 의외로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Chinese Text ProjectScripta Sinica에서 ‘千歲’를 검색해 보면, 황제에게 만세를 부르듯이 제후에게 천세를 부른 예는 명나라 시기의 텍스트로 가야 찾을 수 있습니다. 소설 《봉신연의》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은나라 태자 은교를 ‘전하’라고 칭하고 천세를 부릅니다. 명나라 천계제 시절 황제를 능가하는 권세를 누리던 환관 위충현이 ‘구천세’를 받은 이야기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만세’는 처음부터 황제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이었을까요?

감탄사 ‘만세’의 기원

역사서 《사기》를 보면 ‘만세’의 용례는 전국시대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습니다. 즉, 황제라는 개념보다 만세라는 말이 먼저 존재한 것입니다. 이때 만세는 “야호!” 정도로 기쁨을 표시하는 감탄사였습니다. 예를 들어 진나라 왕이 천하의 보물 화씨벽을 손에 넣었을 때 주변에서 후궁과 신하들이 만세를 불렀고, 제나라 사람들이 연나라에 항복했을 때 연나라 군대에서 만세를 불렀습니다.

초한전쟁 시기에도 비슷합니다. 한나라 왕 유방이 항복하러 나온다는 소문을 듣고 초나라 군대에서 만세를 불렀고, 초나라 왕 항우가 인질로 잡고 있던 유방의 가족을 돌려보냈을 때도 한나라 군대에서 만세를 불렀습니다.

‘만세’에 임금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이 생긴 것은 한나라가 통일 제국이 되고 난 뒤의 일 같습니다. 주목할 점은 전한시대에 황제가 아닌 제후왕에게도 만세를 불렀다는 것입니다. 《서경잡기》를 보면 한 경제의 동생인 양나라 왕의 문객들이 부(賦)를 지을 때 ‘우리 임금 억만세를 누리시길’이라는 말로 양왕을 높였습니다.

만세를 독점한 황제

예식의 일부로서 황제에게 만세를 부르는 제도는 《후한서》 〈예의지 중·하〉에서 시작됩니다. 오직 황제에게만 만세를 불러야 한다는 규범 또한 후한시대에 찾을 수 있습니다. 《후한서》 〈원장한주열전〉에서 신하들이 외척으로서 권력자가 된 대장군 두헌에게 만세를 부르자 한릉이라는 인물이 ‘예에는 신하에게 만세를 부르는 제도가 없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만세를 부른 신하들이나 두헌이 처벌을 받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위진남북조, 수당오대를 지나 송나라로 오자 처벌 규정이 생겼습니다. 북송 시기 구준은 자기 앞에서 만세를 부른 사람이 나왔다는 이유로 유배되었습니다. 또 《송회요집고》의 〈형법〉 파트를 살펴보면 남송 효종 시기 함부로 만세를 부르면 도형 2년에 처한다는 법을 개정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요약하면 ‘만세’에 대한 태도는 왕조에 따라 아래와 같이 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전한: 기쁠 때 만세를 불렀고, 임금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이 생김.
  • 후한: 만세가 예식의 일부로 정착됨. 신하에게 만세를 부르는 것을 비판함.
  • 북송: 신하에게 만세를 부르면 신하를 처벌함.
  • 남송: 함부로 만세를 부르는 사람을 처벌하는 법령을 만듦.
  • 명: 황제는 만세, 제후는 천세를 부름.

여담

한국인으로서 가장 익숙한 만세 부르기를 꼽자면 역시 1919년 3·1 운동의 “대한 독립 만세!”입니다. 이때부터 일제는 조선인들이 만세를 부르는 것 자체를 불온하게 여긴 것 같습니다. 여기 대해서 한국종 변호사는 기쁠 때에도 만세를 부르므로 ‘만세’ 자체가 불온한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여학생들이 만세를 불렀다고 불온하다고 할 수 없다. 원래 ‘만세’란 감정의 발로이다. 삼일운동 때 ‘조선독립만세’ 또는 ‘만세’를 불렀다고 해서 보안법 위반이라고 하지만, ‘만세’가 반드시 조선 독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기쁠 때에도 만세를 부른다. 이상경. (2020). 〈1930년 서울 여학생 만세운동 연구: 여학생의 「신문조서」를 활용하여〉. 《여성과 역사》 33, 191–232.

만세운동에 참여한 여학생들의 형량을 줄이기 위한 수단이기는 하지만, 뜻밖에 ‘만세’의 기원에 충실한 논리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