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말 군벌들의 황제 흉내
유언의 수레와 유표의 제사
《삼국지》의 배경인 후한 말, 이른바 “황건의 난”이 일어나고 황제의 권위가 약화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군벌들이 독자적으로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이들은 명목상 목, 자사, 태수 등 지방관의 직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한나라 황제를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기주목 한복과 발해태수 원소는 “반동탁연합” 끝에 헌제 대신 새로운 황제를 옹립하려고 했고, 원술은 참위설을 근거로 스스로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황제를 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여기까지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황제의 권위를 침범한 군벌은 이들뿐만이 아닙니다. 헌제를 핍박했다고 평가받는 조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 포스트에서 소개할 내용은 익주목 유언이나 형주목 유표처럼 일견 (군벌치고는) 온건한 이미지를 가진 이들의 사례입니다. 이들은 황제를 옹립하거나 자칭하지 않았지만, 황제 전용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각기 갖추었습니다.
우선, 익주를 다스린 유언은 승여, 즉 황제만 탈 수 있는 수레를 만들었습니다.
유언의 야심은 점차 커져서, 승여의 수레를 만들어 1천여 대나 갖추었다.1
《삼국지》 촉지1 〈유언전〉
승여는 예전에 〈면류관과 승여〉에서 설명한 대로 후한시대에 황제를 상징하는 기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승여를 만들었다는 것은 황제의 권위를 자기의 것으로 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삼국지》 본문에서도 유언의 뜻이 점차 성대해졌다고[焉意漸盛]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형주를 다스린 유표는 천자만 거행할 수 있는 제사인 교사를 지냈습니다.
유표가 하늘에 교를 지내고 땅에 사를 지낼 때 한숭이 바른 말을 올렸으나 채택되지 못했고 점차 거슬리는 취급을 받게 되었다. 2
《삼국지》 위지6 〈유표전〉 주석 《선현행장》
조조는 이 일을 빌미로 유표의 별가종사 유선에게 유표의 죄를 물어 공격하겠다고[奉辭伐罪]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자신의 격과 신분에 맞는 제사를 지내는 것은 유교맨들에게 있어 더없이 중대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삼국지》 위지29 〈두기전〉에서 유표는 두기와 맹요에게 한나라 황실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아악을 정비할 것을 명령해 놓고 정작 자신의 뜰에서 아악을 연주시키려고 해서 두기에게 빈축을 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유언은 황제 전용 하드웨어에, 유표는 황제 전용 소프트웨어에 각기 관심을 가지고 자신이 지배하는 지역에 설치하고자 했습니다. 현대인이 보기에는 황제를 바꾸려고 한 한복과 원소, 황제를 자칭한 원술, 황제를 핍박한 조조와 달리 “역적”이라는 인상이 크게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법을 중시한 유교 사회에서 황제 전용 기물을 만들고 황제 전용 제사를 지내는 참월은 역적의 행위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유언과 유표가 천하를 다스리는 황제를 바꾸거나 한나라 황실을 뒤엎으려고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지배력을 행사하는 지역 내에서는 자신이 황제라고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