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면류관과 승여

면류관과 승여

후한시대에 황제를 상징한 사물은?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The Crown》은 영국 국왕 엘리자베스 2세의 생애를 다룬 드라마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crown이라는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는 왕관입니다. 그런데 crown은 단순히 왕관이라는 사물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국왕의 지위, 혹은 국왕 개인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입니다.

이런 용법을 환유법이라고 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환유법이란 ‘어떤 사물을, 그것의 속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다른 낱말을 빌려서 표현하는 수사법’을 말합니다. 한국어의 경우 국회의원을 ‘금배지’라고 부르는 예를 꼽을 수 있고, 대표적인 영어사전인 《Merriam-Webster》에서는 환유(metonymy)의 대표적인 예시로 앞서 말한 crown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현대인들이 진나라·한나라 황제의 상징으로 가장 흔하게 떠올릴 사물 또한 황제가 머리에 쓰는 관입니다. 많은 만화와 게임 일러스트 등에서 진 시황, 전한 무제, 후한 헌제 등의 황제는 면류관을 쓴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마치 황제는 항상 면류관을 썼고, 황제 이외의 사람들은 면류관을 전혀 쓸 수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후한서》 〈여복지〉에서 말하는 규범은 전혀 다릅니다. 면류관은 후한시대에 도입되었고, 천지나 종묘에 제사를 지낼 때 착용했으며, 황제뿐만 아니라 삼공·제후, 경·대부에 이르기까지 제사에 참여하는 모두가 착용했습니다.

한나라에서 오직 황제만 쓸 수 있었던, 그리고 황제가 일상적으로 썼던 관은 통천관(通天冠)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영어와 달리 통천관이 황제를 가리키는 환유 표현으로 사용되지는 않았습니다. 황제가 쓰는 기물의 명칭으로써 황제 자체를 가리키는 단어는 따로 있었습니다. 과연 무엇일까요? 옥새일까요?

《후한서》와 《삼국지》에서 찾을 수 있는 말은 바로 승여(乘輿)입니다. 《후한서》 〈여복지〉에서는 ‘황제’를 써야 할 자리에 일관되게 ‘승여’를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위에서 언급한 통천관도 ‘승여의 일상복’[乘輿所常服]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즉, 영국에서 왕관에 해당하는 crown으로 군주를 가리켰다면 한나라 사람들은 황제가 타는 수레인 ‘승여’로 군주를 가리켰습니다.

《삼국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위지9 〈조상전〉 본문에서는 조상의 사치를 말할 때 그의 음식, 수레, 의복이 ‘승여’에 비길 지경이었다는 표현을 썼습니다[爽飲食車服擬於乘輿]. 만약 ‘조상의 수레가 승여에 비길 만했다’라고만 했다면 ‘승여’가 황제의 수레를 가리켰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음식, 수레, 의복 등 기물 일반을 이야기하므로 수레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황제 자체를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위서6 〈동탁전〉 주석에 인용된 《위서》에서는 ‘승여’가 가시울타리 안에서 살았다는 말이 나옵니다[乘輿時居棘籬中]. 여기에서도 ‘승여’는 헌제의 수레가 아니라 헌제 자신을 가리킵니다.

즉, 후한시대에 The Crown의 용례에 가까운 단어를 찾는다면 ‘승여’일 것입니다. 《후한서》부터 정사에 편입된 〈여복지〉의 구성에서 알 수 있듯이, 탈것은 신분을 나타내는 장치로서 복식 이상으로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고 복식만큼 관심을 가질 만한 소재입니다. 《삼국지》를 바탕으로 창작을 하고 대화를 쓸 때, 황제를 매번 ‘황제’라고 지칭하기보다 ‘승여’ 같은 환유법을 써 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