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작 1-1. 자살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려서
조조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조조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는 동안 진궁은 꿇었던 무릎을 세우고 일어났다.
“이만 나가서 목에 칼을 받고 군법을 밝히겠습니다.”
조조도 그것이 정답임을 알았다. 하지만 정답을 순순히 따른다면 조조가 아니다.
때마침 조조의 머릿속에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법을 밝히겠다면 왕도에서 형을 집행해야겠어.”
조조는 자신의 천재적인 발상에 만족했다. 진궁을 살려서 허도로 보낼 좋은 구실을 얻었다.
”궁宮이 듣기로 장수가 군대를 이끌고 나오면 임금의 명령도 안 들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처단하셔도 괜찮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눈물을 그렁거릴 것 같았던 조조는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경卿의 죄목은 반역이잖아. 국가國家께도 반역자를 손수 벌할 기회를 드려야지.”
“궁宮의 목을 보내드리면 될 일입니다.”
”경卿을 어떻게 할지는 국가의 결정에 따를 거야.“
이번에는 진궁이 조조의 뻔뻔함에 할 말을 잃은 듯했다. 그 틈을 타서 조조는 진궁을 묶은 밧줄을 사슬로 바꾸고 함거에 태우라고 지시했다.
허도에 머물고 있던 상서령尚書令 순욱은 (5) 사공司空의 도장으로 봉인된 급행 편지를 먼저 받았다.
‘공대를 허도로 보냈습니다. (6) 영군令君은 사공司空의 뜻을 헤아려 평소의 주장대로 처리하기 바랍니다.’
조조의 뜻이라면 진궁을 살리되 도망치치 못할 상태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조조가 천자를 모시고 허도로 천도한 뒤 순욱이 줄곧 하던 주장은 육형肉刑을 부활시키자는 것이었다.
일찌기 효문황제孝文皇帝께서 육형肉刑을 폐지하신 것은 태평한 시대를 맞아 베푸신 은덕이었습니다. 지금의 어지러운 시대에 이르러서는 사형은 너무 무겁고 생형은 너무 가벼우니 생형을 받은 자가 죄를 거듭 범하여 사형에 이르는 일이 많습니다. 법은 때에 맞게 제정하는 것인즉 사형의 일부를 참좌지斬左趾로 대체하여 죄인이 다시 법을 범하지 못하게 하면서도 죄인에게 살 길을 열어 주는 것이 더 큰 은덕이 될 것입니다.
순욱은 조조에게 답장을 보냈다.
‘공대처럼 강직한 사람이 순순히 육형을 받으려고 할지가 걱정입니다.’
순욱은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했다. 진궁이 온전하지 못한 몸으로 살아남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한다면 막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진궁은 더없이 위험한 인물이었고 제거해야만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진궁이 구차하게 살아남는 모습을 차마 보고 싶지 않았다.
며칠 후 진궁이 허도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순욱은 진궁이 갇힌 감옥을 찾아갔다. 구불구불한 통로를 지나 감옥에서 가장 깊은 곳에 박힌 방으로 가까이 가자 어둠 속에서 진궁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약의 향은 여전하군.”
순욱은 천천히 등불을 밝혔다. 나무로 만든 수갑과 차꼬를 찬 진궁은 4년 만에 보는 순욱의 얼굴을 외면하고 계속 떠들었다.
”여기 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서 여봉선 목이 걸린 걸 나한테 보여줬는데, 너무 상해서 못 알아봤어. 내 목은 그보다 싱싱한 상태로 오르겠지? 내 목은 언제 잘라 줄 거래?”
“벌써부터 참수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어.”
”그럼 요참이야? ”반란”의 주모자라서?”
”……”
”아직 결론이 안 나왔어? 귀찮게 재판 같은 거 하나?”
순욱은 나즈막히 말했다.
”판결은 정해졌어.”
”뭔데?”
”참좌지.”
진궁은 놀라서 입을 껌뻑이다가 간신히 말했다.
”그거 서도에 있을 때 없어졌잖아?”
”지금 같은 세상에는 육형이 필요하지.”
”그런데 왜 하필 나냐고.”
”치욕을 피하고 온전한 몸으로 죽는 건 내가 도와줄 수 있어.”
순욱은 소매 속에서 작은 병을 꺼냈다. 진궁은 병을 받지 않고 한참 동안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순욱은 의아했다.
”진공대가 이걸 놓고 이렇게 오래 고민할 사람이었나?”
”치욕을 피할 타이밍은 하비성에서 못 뛰어내렸을 때 이미 놓쳤어. 인제 와서 뭔가 하기에는 늦어 버렸지.”
“그러면 육형을 받을 작정이야?”
”그래. 조 공이 나를 죽이게 만들어서 치욕을 씻을 거야.”
이듬해 건안 4년 늦봄, 창읍에 주둔하던 조조는 군대를 조인에게 맡기고 몰래 허도로 돌아와서 사공부 별채를 찾았다. 진궁은 침상에 반쯤 드러누워 책을 읽고 있었다. 조조가 반갑게 물었다.
“공대, 허도는 지낼 만해?”
진궁은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 아닌 대답을 했다.
“뜻밖이네요. 방연이 손빈한테 어떻게 되었는지를 모르실 분이 아닌데?”
“《사기 열전》 읽어? 그래, 손빈처럼 재기할 자신은 있고?”
“정말로 감사하게도 혀는 붙여 놓아 주셔서요.”
“세상에 경卿의 설득이 안 먹히는 사람도 있다는 건 지난 4년 동안 지독하게 겪었잖아?”
“그래서 내 말을 안 들은 사람의 목이 시장에 걸렸잖아요. 엄청나게 설득력 있는 근거죠.”
“어차피 경卿은 내 옆에 붙여 둘 테니까 다른 사람 만날 일 없어. 안 그래도 군대가 하수河水를 건너기 전에 데리러 온 거야.”
진궁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군자는 형을 받은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는다고 했는데요. 그냥 사공부 문지기나 시켜 주세요.”
조조는 웃었다.
“안 돼, 안 돼. 그나저나 고孤를 군자로 봐 주는 건가?”
진궁은 고개를 들고 조조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군자가 안 되겠다면 스스로 고孤라고 칭하지나 말든가요.”
“우리 공대가 귀여운 말을 다 하네.”
진궁은 침상 옆에 놓인 지팡이를 집어들었다.
”벌써 일어날 필요는 없어. 이따가 사람들이 데리러 올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