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급급여율령, ‘여율령’의 원래 의미

급급여율령, ‘여율령’의 원래 의미

동아시아 귀신은 처음부터 인간의 공권력에 복종했는가?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귀신을 쫓는 주문에 쓰이는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이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율령대로 신속히 처리하라’라는 뜻이 됩니다. 여기서 ‘율령대로’라는 의미의 여율령(如律令)은 원래 전한 시대 공문서를 끝내는 상용구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관료제의 전통이 강한 동아시아에서는 귀신들이 관아의 공권력에 약하다는 해석이 종종 나옵니다. 중국 원나라 때의 유명한 희곡 《감천동지두아원》, 또 조선 시대의 《장화홍련전》 등 여러 이야기에서 죄없이 살해된 여자 귀신이 인간 관리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장면이 나오는 만큼, 이런 해석은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나라에서 “여율령”이 귀신을 부리는 주문처럼 쓰인 예시를 보면, 적어도 이것이 처음부터 인간의 공권력을 내세워 귀신의 해코지를 막고자 하는 의도로 나왔던 것은 아닌 듯합니다. 이 사실은 한대에 여러 무덤에서 발견된 고지책(告知策), 돌에 새긴 매지권(買地券)과 진묘문(鎭墓文)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매지권과 진묘문의 마지막에 “여율령”이라는 문구가 반복해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여율령”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우선 고지책, 매지권, 진묘문의 의미를 간략하게 알아봅시다(홍승현 2022:98).

  • 고지책: 망자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갈 때 지하 세계의 관리 및 신에게 보내는 신고서.
  • 매지권: 망자가 죽은 자들과 맺은 계약의 증명서.
  • 진묘문: 죽은 혼령을 달래고 악귀의 해코지로부터 산 자를 보호하며 무덤 주위의 수상한 기운을 눌러 진정시키는 진혼문(鎭魂文).

이 세 종류의 문서는 모두 사람이 죽은 뒤에 가는 지하 세계의 관리 혹은 신에게 보낸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홍승현 2022:103). 실제로 여러 고지책에서는 문서의 수신인으로 지하에서 태수나 현령의 보좌관을 맡은 지하승(地下丞)을 명시했고, 매지권의 수신인은 더욱 지위가 높아져서 지하의 태수를 뜻하는 지하이천석(地下二千石)이 되었으며, 진묘문에서는 죽은 자가 지하 세계에서 치러야 할 부역과 세금을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지상의 관리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무덤에 넣은 매지권과 진묘문의 “여율령”에서 “율령”은 이승의 것이 아니라 저승의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한나라 사람들이 믿기에 이승의 법령과 저승의 법령의 내용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죽은 자, 귀신이 복종해야 할 대상은 이승의 관리가 아니라 저승의 관리로 보입니다. 특히 진묘문에는 ‘죽은 자들이 산 자들을 저승에 끌고 가는 것에 대한 공포’가 나타났습니다(홍승현 2022:135). 이렇게 한나라 사람들은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영역을 철저히 분리하기를 바랐고, 따라서 죽은 자가 이승의 관아에서 관리되었다면 오히려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단, 《두아원》과 《장화홍련전》처럼 귀신이 인간 세계의 관리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야기는 후한 시대의 역사를 서술한 《후한서》에서도 찾을 수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후한서》의 관리들은 귀신을 비롯한 이물(異物)이 인간에게 ‘해를 끼침으로써 인식 범위에 들어온‘ 경우에 퇴치에 나섰으며(정지현 2016:156), 중세 이후의 《두아원》 등과 달리 인간 세계의 통치 원리가 되는 법령뿐만 아니라 주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등 이물에 특화된 방법을 써서 대응했습니다(정지현 2016: 153). 인간 세계의 율령이 가지는 권위만으로 일반적인 이물을 제어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한나라의 명계(冥界) 문서 및 《후한서》에 기재된 내용을 토대로 판단하자면 “급급여율령”의 율령은 인간 세계의 공권력보다는 귀신의 세계를 관장하는 법칙으로 해석하는 편이 타당해 보입니다. 이것이 한나라 이후에 어떻게 변했는지 알아보아도 재미있겠습니다. 동진 시기에 편찬된 《수신기》가 처음에 귀신 세계의 역사책으로 여겨졌고 한대와 마찬가지로 지하 세계의 관료 체계와 부역을 다루는 것을 볼 때, 변화가 존재했다면 남북조 시대 이후에 본격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참고 문헌

  • 정지현. (2016). 《양한서의 신이 서사 연구》.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박사학위논문.
  • 홍승현. (2022). 《석각의 사회사: 고대 중국인의 욕망과 그 기록》. 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