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욱은 조조의 ‘자방’이 되기를 싫어했을까?
순욱은 조조와 함께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조조에게 최고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특히 조조가 순욱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의 자방”이라고 말한 것이 유명합니다. 여기서 “자방”이란 한나라를 세운 고제 유방의 모사인 장량을 말합니다. 그러니 조조는 순욱을 장량에게 빗대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유방에게 빗댄 것입니다.
한나라의 신하인 조조가 자신을 한나라의 황제에 빗대는 것은 반역의 뜻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통속연의》를 편집한 청나라 사람 모종강도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이것은 은연중에 자신을 한고조에 비기는 말이다. 어찌 구석(九錫)이 주어진 다음에야 그에게 역심이 있었음을 비로소 알겠는가? 그러나 순욱은 이때 의심하지 않고 후일에 와서야 의심했다. 일찍이 간파하지 못한 것이 애석할 따름이다.
하지만 순욱이 순욱:조조=장량:유방 비유를 즉시 간파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은 인물이었을 리가 없습니다. 모종강의 평을 따른다면 순욱은 충성스러울지는 몰라도 현명하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순욱은 이미 “한나라의 충신”으로 굳어져 있기 때문에, 이 비유의 의미를 간파하고도 조조를 의심하지 않았다면 심각한 “캐붕”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인지, 순욱이 자기를 자방에 빗대는 말을 듣자마자 속으로 조조의 야심을 경계했다고 설정한 창작물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왕샤오레이의 소설 《삼국지 조조전》입니다(X에서 간접적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삼국지》 위지10 〈순욱전〉에서 한 문단만 더 읽어 본다면, 순욱이 조조를 고제 유방에 비기기를 거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부하기는커녕, 고제 유방뿐만 아니라 후한을 세운 광무제 유수까지 조조의 롤모델로 함께 제시했습니다. 서주대학살 이후 장막과 진궁이 여포를 영입하여 연주에서 조조에게 반기를 들었을 때의 일입니다. 조조가 서주를 다시 침공하려고 하자 순욱은 조조를 만류하며 말했습니다.
고조는 관중을 보존했고 광무제는 하내를 근거지로 삼았습니다. 두 분 모두 근본을 견고하게 지켜서 천하를 도모한 것입니다.
즉, 순욱은 유방:관중=유수:하내=조조:연주 비유로 조조를 전한과 후한의 초대 황제와 동급으로 놓았습니다. 왕샤오레이의 설정을 따른다면 순욱은 충성스럽고 현명할지는 몰라도 일관성이 부족합니다.
혹여나 이것이 순욱의 진심은 아니었다고, 분노한 조조를 어르고 달래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고 해석하고자 할 수도 있습니다. 설사 그렇다고 치더라도, 순욱은 적어도 한나라의 지존에 대해 이 정도의 타협이 가능한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순욱과 조조가 대화할 때 조조를 유방과 유수에 비기는 것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역사책 《삼국지》에서 〈순욱전〉 바깥으로 가면 새로운 사례가 더 나옵니다. 위지16 〈두기전〉에서 조조는 하북을 평정한 뒤 고간 등의 잔여 세력을 공격하기 앞서 순욱에게 하동군 태수의 적임자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군(君)은 나를 위해 소하와 구순을 추천해 주십시오.
소하는 고제 유방의 신하고, 구순은 광무제 유수의 신하입니다. 두 사람 다 후방을 지키고 군수물자를 조달하여 유방과 유수가 천하를 얻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순욱은 이 비유에 이의를 달지 않고 즉시 두기를 추천했습니다.
이런 비유가 반복해서 나온다는 관찰을 통해, 조조를 유방에게 빗대는 것은 조조와 순욱 두 사람 사이에서 합의된 일이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런 비유가 조조와 순욱 사이의 대화에서 주로 발견되는 것을 보면, 조조는 오히려 상대가 순욱이었기 때문에 자신을 거리낌 없이 유방에 비길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