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향기는 저 멀리 남방에서
매梅의 분포와 매화 문화의 시작
지난 포스트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에서 이야기했듯이, 고대 중국에서는 삼국시대까지도 주요 문헌에 매화가 기록된 사례를 거의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포스트에서는 그 까닭을 알아보고, 중국에서 매화를 꽃으로 즐기는 문화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추정해 보겠습니다.
매화나무의 원산지는 중국 남방입니다. 《중국식물지》 영문수정판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사천성 서부와 운남성 서부가 원산지라고 하며, 한·중·일 이외에 동남아시아 라오스 북부와 베트남 북부에도 분포한다고 합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남쪽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따라서 적어도 《시경》의 시대에 장강 북쪽의 중원에서는 매화나무가 친숙한 토종 식물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국적인 매력을 풍겼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어쨌든 매실을 따 먹을 수 있을 만큼은 접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바로 이 애매한 거리감 때문에 매화나무를 감상하는 풍토가 충분히 자리잡지 못한 것이 아닐까요?
매화나무의 땅, 오월 지역
앞서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에서 세어본 것처럼 한나라 때까지의 문헌에서 梅(매)라는 글자는 총 132번 출현했습니다. 그중에서 인명이 27건, 지명이 13건이었습니다. 132건 중 40건이 고유명사였다는 것은 작은 비중이 아닙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고유명사로 표현된 인물과 지역이 (출신지가 명시되지 않은 상나라 매백을 제외하면) 대부분 중국에서 동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오월 지방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 이상 출현한 고유명사를 하나씩 살펴봅시다.
장군 매현의 활약
《사기》 〈항우본기〉와 〈고제본기〉에는 파군 오예의 장수 매현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오예는 원래 진나라 파양의 현령이었다가 진나라에 반기를 들고 군대를 일으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오예의 장수 매현이 유방의 군대와 협력하여 함께 여러 성을 항복시켰습니다. 진나라가 멸망한 후 매현은 공로를 인정받아 십만 호의 식읍을 거느린 제후가 되었습니다.
매령을 넘어
다음으로 한자 梅(매)가 포함된 지명으로 반복해서 나오는 것은 《사기》 〈동월열전〉의 매령이라는 고개입니다. 전한시대 무제는 영토를 확장하려는 야욕을 가지고 각지에서 전쟁을 벌였는데, 동남쪽 이민족 동월을 침공하기 위해 먼저 이 매령에 군대를 주둔시켰습니다.
지도로 살펴보면 매령은 매현의 근거지였던 파양 인근에 위치해 있고, 매령의 ‘매’는 매현의 성씨 ‘매’와 같습니다. 성씨는 조상이 봉토로 받은 지명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으므로, 매 또한 지명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쩌면 매화나무가 많은 지역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 지역은 장강 하류 이남에 위치해 있습니다. 한나라의 수도 장안과 낙양에서 동남쪽으로 아주 멀리 떨어진 지역입니다. 이 지역에 매화나무가 많아서 매라는 지명이 붙은 것이라면, 매화나무는 중원 사람들보다 남방 사람들에게 익숙했을 나무입니다.
선비 매복의 지조
한나라 초까지 매현이 활동한 이래로 매씨 성을 가진 명사가 다시 등장하는 것은 전한 말입니다. 《한서》 〈매복전〉에 나오는 매복은 관직을 떠나 고향에 돌아갔으나 여러 차례 조정에 글을 올려 정세에 대한 의견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그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한나라는 멸망했습니다. 왕망이 집권하자 매복은 처자식을 버리고 고향을 떠났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신선이 되었다고 믿었습니다. 왕망이 멸망한 뒤 후한이 들어선 뒤에도 매복은 회계군, 오군 등 오월 지역 등지에서 목격되었다고 합니다.
남북조 시대 남방의 매화 문화
이렇게 고유명사로서 梅(매)는 중국 남방에서 주로 출현했습니다. 인명과 지명에 쓰인 梅(매)가 매화나무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으리라고 곧바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중국의 범위가 중원에서 남쪽으로 확대되는 시기 매화 문화가 함께 발달했다는 사실과 나란히 놓고 살펴보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일지매, 매화 나무 한 가지
일지매. 만화가 고우영의 작품에 나오는 의적의 활동명으로 유명하지만, 이 단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한나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전한시대 말에 활동한 학자 유향이 고금의 이야기를 수집하여 엮은 《설원》에 월나라 사자가 양나라 왕에게 매화 나무 한 가지를 보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양나라 신하 한 사람이 이 보잘것없는 선물에 격분해서 사자를 모욕했지만, 사자는 오히려 논리적인 언변으로 반격했습니다. 여기에서 한나라 사람들이 매화나무 가지를 오나라·월나라의 대표 아이템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남북조시대 남조 송나라의 육개도 당사자로서 인정한 바입니다.
折梅逢驛使 매화를 꺾다가 우체부 만나
寄與隴頭人 농서에 거하는 사람에게 부치네
江南無所有 강남에 사는 자 가진 게 없어
聊贈一枝春 그나마 봄날의 나뭇가지 보내네육개, 〈증범엽시〉.
오군 사람인 육개는 북방 출신 친구 범엽에게 강남에는 있는 게 없어서 매화나무 가지를 보낸다고 장난스럽게 말했습니다.
남조 황실의 매화꽃 감상
남북조시대 남조에서 매화 감상은 황족의 고급 취미로 격상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매화꽃으로 이마를 장식한 송나라 수양공주의 매화장, 쌓인 눈을 뚫고 매화를 찾아나선 양나라 간문제의 여러 시 작품입니다.
남북조시대의 매화 문화에 관해서는 아래의 텀블벅 프로젝트 페이지에서 자세히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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