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진궁, 백문루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3
01호에서는 《삼국지》의 대사를 《삼국연의》에서 변형 없이 (하지만 좀 뜬금없이) 사용한 사례를 보았고, 02호에서는 같은 대사에서 호칭어 하나만 바뀐 사례를 보았습니다. 03호에서 살펴볼 사례는 좀 복잡해서, 나본 양반의 오리지널 대화로 시작해서 《삼국지》의 내용으로 이어지고, 여기에서 나오는 다양한 호칭어가 일부는 변형되고 일부는 유지됩니다. 진궁이 하비에서 사로잡혀서 조조 앞에 끌려온 뒤에 나누는 대화입니다.
《삼국연의》 19회에서 해당 대화만 뽑아서 번역해 보았습니다. 앞부분은 연의에서 창작된 내용입니다.
조조: 공대公臺는 그간 별고 없었는가?
조금 전에 고순을 너[汝]라고 불렀던 조조가 진궁은 자(字)로 불러서 친한 척과 대접을 겸하네요. 정사의 대화에서도 이렇게 자로 시작했습니다.
진궁: 네[汝]가 마음을 올바르게 쓰지 않아서 내[吾]가 너를 버렸다!
하지만 연의의 진궁은 정사와 달리 조조에게 반말을 서슴지 않습니다. 조조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조조: 내 마음이 올바르지 못하다… 그러면 공[公]은 또 왜 여포만 섬기셨소?
조조가 진궁에게 공이라고 존칭을 써 보지만 진궁은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진궁: 포(布)가 지모는 없어도 너[你]처럼 속임수를 쓰거나 음험하지는 않다.
니你는 삼국 시대의 기록에는 없고 후대에 쓰이게 된 말입니다. 연의에서 검색해서 용례를 살펴보니 아랫사람에게 쓰는 것 같습니다. 진궁은 여전히 조조에게 반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포를 이름으로 칭하는 것은 덤이고…
아무튼 이제 《삼국지》에서 인용해 온 대사가 이어집니다.
조조: 공은 스스로 지모가 많다고 하시더니 지금은 결국 뭐가 된 거요?
으악! 《삼국지》 원문의 2인칭은 ‘공’이 아니라 경卿인데! 02호에서 언급했듯이 《삼국연의》에서 ‘경’의 쓰임은 군주가 신하를 부를 때로 축소됩니다. 연의에서는 진궁이 조조의 부하였다는 설정이 완전히 빠졌으니… 그리고 다음 대사에서 아雅는 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진궁: (여포를 돌아보며) 이 사람이 내 말을 안 들은 것이 한이다! 만약 내 말을 따랐다면 포로로 잡히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여기에서 진궁이 1인칭으로 이름[宮]을 쓰는 것은 살려도 좋을 것 같은데 나본 양반은 자기 설정을 고수합니다. 진궁이 조조에게 말할 때 자기를 낮추는 것을 절대로 허용할 수 없었나 봅니다.
조조: 오늘 일은 어떻게 되겠소?
진궁: (큰 소리로) 오늘은 죽으면 다 끝난다!
아니, 왜 고함을 지르고 그래요… 아들로서 불효하고 신하로서 불충했으니 죽는 것이 자기의 본분이라고 말하던 공손한 진궁은 연의에 없습니다.
조조: 공이 그러시다면 공의 노모와 처자는 어찌하오?
진궁: 내가 듣기로 효로 천하를 다스리는 자는 남의 부모를 해치지 않고 어진 정치를 천하에 베푸는 자는 남의 제사를 끊지 않는다고 하더이다.
이렇게 연의에서 설정한 호칭어를 계속 쓰다가 갑자기…
진궁: 노모와 처자의 생사도 명공明公께 달려 있을 뿐입니다.
갑자기 진궁이 조조를 ‘명공’이라고 높여서 깜짝 놀랐습니다. 논영회 때만큼 놀랐어요. ‘명공’은 진수의 《삼국지》 본문이 아니라 배송지가 주석으로 인용한 어환의 《전략》에서 가져온 것인데, 끝까지 조조에게 반말을 고수하던 진궁이 마치 가족을 살리려고 어쩔 수 없이 존댓말로 호소하는 것 같습니다. 나본 양반은 혹시 진궁에게 가족을 걱정하는 따뜻한 가장이라는 이미지를 주고 싶었던 것일까요?
정리하자면, 나본은 《삼국연의》를 쓰면서 원작인 《삼국지》에서의 쓰임이 달라진 경卿을 자기 시대에 맞는 호칭어로 바꾸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기의 캐해석을 톡톡히 심는 것을 지난 02호와 이번 03호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똑같은 ‘경’이었지만 손책이 주유를 부를 때는 자[公瑾]로 바뀐 반면 조조가 진궁을 부를 때는 ‘공’으로 높아졌습니다. 특히 후자의 경우 정사와 다른 연의의 해석이 돋보이는 장치였습니다. 호칭어를 이렇게 수정해서 활용하니까 정사 본문이나 주석의 대사를 수정 없이 옮기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를 낼 수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