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갈 곳이 있는 사람
건안5년 여름 6월, 관도에서.
조조가 급하게 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진궁은 뜰에 나와서 걷고 있었다.
“오늘 오실 줄은 몰랐어요.”
방 안에 있을 때와는 다른 차림이었다. 옷자락이 땅에 끌리지 않도록 짧게 자른 겉옷을 입고1 소매를 걷어붙인 왼팔로 지팡이를 짚었다.
조조는 숨을 헐떡이며 대답했다.
“잠시 숨어 있으려고.”
“숨기 좋은 곳이긴 하죠.”
조조가 금지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해도 육형을 받은 사람이 은거하는 곳에 가까이 오려는 사람은 없었을 터였다.2
“그런데 공公이 숨을 일이 있다는 건 뜻밖인데요.”
진궁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조조는 그를 따라가며 말했다.
“관 장군 때문에……”
“관 ‘장군’?”
“관운장 알잖아?”
물론 진궁은 관우를 알고 있었다.3
“아……”
그러고 보니 관우를 장군이라고 칭하는 것이 진궁에게는 당연한 사실이 아니었다. 유비가 도망쳤고 관우가 항복해서 편장군이라는 벼슬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을 길이 없었을 터였다.
“알겠어요.”
하지만 방금 주고받은 두 마디로 지금까지의 사정을 추측해 낸 모양이다.4
“장문원 말로는……”
“……장 ‘문원’?”5
하비성이 함락된 후에 장료가 투항해서 조조의 부하가 되었다는 것도…6
“아, 알겠어요.”
한 걸음 만에 곧 파악한 모양이다. 조조는 정보를 더 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무튼 지금 나가면 관 장군하고 마주칠 것 같으니까 여기 있어야겠어.”7
“마주치면 어때서요? 관우한테 잘못한 거 있어요?”
조조는 약간 뜨끔했지만 떳떳했다.
“떠나겠다고 작별 인사를 할 거란 말이야.”
“그래서요?”
“떠나면 다시 못 만나잖아.”
“잘됐네요. 마주치기 싫다면서요.”
조조는 억울했다.
“누가 싫대?”
“좋으면 나가서 만나요. 지금 여기에 숨어 있어도 관우를 못 만나긴 마찬가지잖아요?”
답답해진 조조는 진궁의 앞을 가로막았다.
“쓸데없는 건 금방 알아내면서 왜 이건 이해를 못 해?”
진궁은 걸음을 멈추고 차갑게 쏘아붙였다.
“당장 누구를 만날지 말지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이렇게 징징대는 이유를 내가 어떻게 이해하겠어요.”
징징댄다는 말에 울컥했지만, 조조는 대단한 인내심을 발휘해서 참기로 했다.
“가지 말라고 붙잡으면 날 싫어할 거야.”
“나도 지금 공을 보기 싫어요.”
결국 조조는 버럭 화를 내었다.
“누가 네8 생각을 물었나?”
진궁은 입을 다문 채 조조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당으로 갔다. 조조는 막지 않았다. 진궁이 지팡이와 난간을 붙잡고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서 부축해 줄까 하는 마음이 잠시 들었으나 그만두었다.
당에 오른 진궁은 지쳤는지 마루에 지팡이를 던지고 그대로 드러누웠다. 조조는 그제야 따라 올라가서 마루에 걸터앉아 길게 한숨을 쉬었다.
“관운장은 나를 떠나겠지.”
“관우는 좋겠네, 갈 곳도 있고.”
조조는 마루를 손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경卿이 있을 곳은 여기야, 공대.”
“알았으니까 어서 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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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갑관요전〉, 〈주박전〉 등. 무관들이 옷자락을 땅에서 3촌(6.9cm) 정도 떨어지게 잘라서 발에 걸리적거리지 않도록 했다는 묘사가 종종 나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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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형을 활발하게 시행한 진나라에서는 육형을 받은 사람들이 은관隱官이라고 하여 아예 따로 격리되어 살았습니다. 도미야 이타루의 《유골의 증언》에서는 육형을 추방형의 일종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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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군과 유비군의 관계에 대해서는 설명할 것도 없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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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어의 효과이기도 한데, 〈붉어진 얼굴〉의 설정에서 진궁은 의대조 사건에 유비가 가담했다는 추가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빨리 알아차리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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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료가 조조의 적이었다면 조조가 자로 부를 이유가 없습니다. (적이라도 나이가 많으면 자로 불러 주기도 하지만, 장료는 조조보다 한참 어리니까 이 가능성은 제외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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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장료전〉에 따르면 조조가 하비에서 여포를 격파한 뒤에 장료가 무리를 이끌고 투항했으므로, 이 썰에서 하비에서 사로잡혀 바로 허도로 보내진 진궁은 장료가 투항한 일을 알 수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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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연의》에서 조조가 관우의 작별 인사를 받지 않으려고 회객패迴避牌를 걸었다는 것을 참조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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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진궁을 ‘너’라고 부른 것은 평소에 경卿이라고 하던 것에 비해 엄청난 하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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