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자살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려서
건안3년 12월에 백문루에서 조조가 진궁을 살리는 데 성공한 이야기. 이른바 정사 《삼국지》 기반이지만 《사기》와 《한서》와 《진서》가 더 많이 들어간.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진궁이었다.
“이만 나가서 칼을 받고 군법을 밝히겠습니다.”1
조조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이를 악물고 대꾸했다.
“그 뜻을 막지는 못하겠군.2 하지만…”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진궁이 마지막 말에 멈칫하는 사이에 조조가 머릿속에 급히 떠오른 말을 재빨리 덧붙였다.
“법을 밝히려면 왕도에서 집행하는 것이 마땅하지.”
장수가 군대를 이끌 때는 임금의 명령도 따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예로부터 내려온 군법이다.3 굳이 수도로 보내어 조정의 결정을 구하는 데 오히려 꿍꿍이가 있는 경우가 실제로도 많았다. 어쨌든 정면으로 거스르기 어려운 명분이었고 진궁이 저항하는 것을 막을 구실은 되었다.
“그러니까 전리품이 되라고요?”
조조는 여유를 되찾고 능글거렸다.
“그런 말은 한 적이 없는데.”
이렇게 해서 진궁은 사슬에 묶이고 함거에 실려4 허도로 오게 되었다.
허도에 머물고 있던 상서령尚書令 순욱은 사공司空의 도장으로 봉인된 편지5를 먼저 받았다.
‘공대를 허도로 보내니 영군令君6은 내 뜻을 헤아려 처리하라.’
조조의 뜻을 헤아리기는 어렵지 않았다. 진궁을 죽이지 않되 도망치지도 못하게 해야 했다. 그리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공 조조의 사감이 반영된 의견이 아닌 상서령 순욱의 주청으로 발의되어야 했다.
“신臣 욱彧이 남몰래7 생각하기로는 일찌기 효문황제孝文皇帝께서 육형肉刑을 폐지하신 것은 태평한 시대를 맞아 베푸신 은덕이었습니다.8 지금의 어지러운 시대에 이르러서는 사형은 너무 무겁고 생형은 너무 가벼우니 생형을 받은 자가 죄를 거듭 범하여 사형에 이르는 일이 많습니다.9 법은 때에 맞게 제정하는 것인즉10 사형의 일부를 참좌지斬左趾11로 대체하여 죄인이 다시 법을 범하지 못하게 하면서도 죄인에게 살 길을 열어 주는 것이 오히려 은덕이 되리라고 감히 아룁니다.”
상서대로 돌아와서 답장을 썼다.
‘한 가지 걱정은 공대처럼 강직한 사람이 순순히 육형을 받으려고 할까 하는 것입니다.’12
순욱의 진심은 걱정이 아닌 희망이었다. 진궁이 불구의 몸으로 살아남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한다면 막을 생각이 없었다.13 더없이 위험한 인물이었고 제거해야만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진궁이 그렇게까지 구차해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순욱은 술과 도시락을 준비해서 감옥으로 진궁을 찾아갔다. 조조의 명령이 따로 있었는지 진궁의 외관은 말쑥했다. 진궁은 순욱이 들고 온 것을 보고 손사래를 쳤다.
“여기 온 뒤로 술하고 고기14를 끼니마다 먹여서 질릴 지경인데.15 돼지를 도마에 올려서 목을 따기 전에 얼마나 살을 찌울 작정인지.16”
순욱이 보기에 돼지라고 하기에는 좀 많이 말라 있었다.
“참수가 아니라면?”
“요참인가? 하긴 ‘반란’의 주모자씩이나 되는데 그쪽이 맞겠지.”16
순욱은 소리를 낮추어 나즈막히 말했다.
“참좌지.”
“미친 거 아냐?”
진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300년도 더 전에 없어진 제도를 되살리겠다니 제정신인가?”
예상했던 반응에 순욱은 안심하고 술병을 가리켰다.
“몸을 온전하게 남기겠다면 지금 도와줄 수 있어.”
진궁은 한참 동안 순욱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거절할게.”
“무엇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치욕이 피해질 타이밍은 진작에 놓쳤지.17 하비성이 함락되기 전에 뛰어내렸다면 모를까.”
건안 4년 늦봄, 창읍에 주둔하던 조조는 군대를 조인에게 맡기고 몰래 허도로 돌아와서 사공부 별채를 찾았다.18 진궁은 침상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두 달 만이군, 공대. 허도는 지낼 만한가?”
진궁은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 아닌 대답을 했다.
“뜻밖이네요. 방연이 손빈에게 어떻게 되었는지를 모르실 분이 아닌데?”19
“그 책 《사기》인가 보네? 손빈처럼 재기할 자신은 있고?”20
“참으로 감사하게도 혀를 자르지는 않으셔서요.”21
“허세하고는. 세상에 경卿의 설득이 안 먹히는 사람도 있다는 건 지난 몇 년 동안 몸소 겪지 않았나?”
“내 말을 안 들은 사람의 목이 시장에 걸렸는데22 그보다 설득력 있는 근거가 어디 있나요.”
“그러면 다른 사람을 못 만나게 내 곁에만 두면 되지. 안 그래도 군대가 하수河水23를 건너기 전에 데리러 온 거야.”
진궁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일부러 과장하는 듯도 했다.
“군자는 형을 받은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는다고 했는데요.”24
조조는 웃었다.
“이런, 고孤를 군자로 보는 건가?”25
진궁은 고개를 들고 조조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군자가 안 되겠다면 스스로 고孤라고 칭하지나 말든가요.”
“귀여워.”
진궁은 침상 옆에 놓인 지팡이를 집어들었다.
처음 쓸 때는 진궁이 ‘형여刑餘의 몸’(👈 애초에 이 말을 넣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함) 운운하면서 자조할 예정이었는데 일단 백문루에서 살아 나가는 루트를 탄 이상 캐릭터에도 변화가 안 생길 수 없어서 감옥에서는 술기운이 올라서 순욱에게 비아냥거리고 발목이 잘린 뒤에는 그냥 막나가서 조조에게 뻗대고 아주 팔팔해져 버렸어… 😳
주석을 가장한 진정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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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위서》 〈장막전〉 주석 《전략》. 「請出就戮,以明軍法。」 “칼을 받고”는 륙戮의 의역이며, 사실 문장 전체를 더 공손한 말투로 옮기는 것이 맞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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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위서》 〈장막전〉 주석 《전략》. 不可止。 대사가 아닌 서술이지만 그냥 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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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는 특히 《사기》 〈위장군표기열전〉에서 대장군 위청이 패장을 베지 않고 굳이 황제에게 보낸 사건을 염두에 두고 썼습니다. 또 후대의 일이지만 《진서》 〈선제기〉에서 대장군 사마의가 제갈량에게 여자 옷을 받고는 일부러 싸우겠다고 조예에게 표를 올려서 출진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아낸 일화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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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서역전〉. 서역에서 황제의 명령을 무시하고 임의로 행동한 자들을 수도 장안으로 붙잡아 오는 묘사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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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간을 사용한 한나라에서 도장이 쓰이던 방식입니다. 죽간을 돌돌 말아서 검檢이라는 송장을 붙인 뒤에 끈으로 묶고 진흙으로 봉한 위에 도장을 꾹 찍습니다. 도장에 인주를 묻혀서 찍는 것은 종이처럼 넓은 면을 사용할 때부터 가능했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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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위서》 〈순욱전〉 주석 《전략》. 상서령 순욱을 지칭하는 말로 ‘순령군’이 쓰입니다. 이 글에서 성을 떼고 영군이라고만 한 이유는, 호칭어를 사용할 때 2인칭은 성을 붙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조조에게 말할 때는 조조를 ‘명공’이라고 부르며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는 ‘조 공’이라고 가리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절대적인 규칙은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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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竊에 해당하는 표현을 그냥 넣어 보았습니다. 신하가 황제에게 말할 때 겸손하게 쓰는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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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효문본기〉. 서한 문제 13년(기원전 167년) 5월의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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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형법지〉. 저자 반고의 평론입니다. 후한 사람들은 정말 육형 부활을 원했나 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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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조세가〉. 무령왕이 기마전을 위해 호복을 도입하면서 하는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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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자르는 형벌은 월刖이라고도 하는데, 혹시라도 어감이 예쁘게 들릴까 봐 서한 때 실제로 존재한 형벌 명칭을 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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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소망지전〉의 “소 태부는 강직한 사람인데 감옥에 가려고 하겠는가?”를 변형했습니다. 《삼국지》 주석에서 진궁의 성품이 강직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한편 《논형》 등에 따르면 한나라에서 신체가 훼손된 사람은 선친의 묘소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유교맨인 진궁에게 가장 큰 타격이었을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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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가 훼손되는 것이 한나라에서 얼마나 큰 치욕인지는 사마천의 〈보임소경서〉에서 구구절절 적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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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에서 술과 고기는 세트로 묶여 다닙니다. 《한서》 〈조광한전〉에서 경조윤 조광한이 감옥에 보낸 범인들에게 술과 고기를 주도록 한 것이 생각나서 넣었습니다. 감옥에 간 사람에게 잘해주는 가장 전형적인 방법인 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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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철론》 〈산부족〉에서 술과 고기에 물린다고 표현한 것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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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임소경서〉에 나오는 말을 변형했습니다. 진궁의 입장에서는 포로로 잡힌 시점에서 이미 치욕을 당한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외래어 ‘타이밍’은 개인적 취향으로 일부러 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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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위서》 〈무제기〉. 조조가 실제로 허도에 돌아오기까지는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려서 그냥 몰래 잠시 들어왔다고 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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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손자오기열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방연은 손빈의 재능을 시기해서 그의 두 발을 자르고 은거하게 만들지만 결국은 손빈의 전략에 패해서 전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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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비의 《전론》에 따르면 조조는 사한史漢—《사기》와 《한서》—등 여러 책을 두루 읽었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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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장의열전〉입니다. 변설가 장의는 고문을 당하고도 자기 혀가 붙어 있으면 충분하다고 부인을 위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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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을 받은 뒤에 진궁이 조조에게 말할 때 자기를 낮추지 않게 되었다는 설정입니다. 실제 《삼국지》에서는 얌전하게 자기를 이름으로 칭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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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河가 아직 황하를 가리키는 고유명사이던 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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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소망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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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후의 자칭. 실제 《삼국지》에서는 조조가 진궁에게 말할 때 쓴 적이 없지만 그냥 한 번 써 보게 하고 싶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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