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2-3. 복숭아나무 소담하고

2-3. 복숭아나무 소담하고

건안8년 여름 5월, 허도에서.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접시를 덮은 천을 진궁이 걷어내자 반듯하게 잘린 복숭아 여덟 조각이 향을 뿜었다.1

“분수에 안 맞게 화려한 세팅이네요. 나한텐 그냥 안 썰고 껍질째로 던져 주시면 되는데.”2

조조는 진궁이 예법을 들먹이는 것을 못 들은 척하고 말을 돌렸다.

“먹기 전에 잠깐만. 복숭아 하면 떠오르는 시 없어?”

“또 서왕모 나오는 시 쓰셨어요?”3

“말고, 고전 중에서 찾아봐.”

“시부詩賦 잘 몰라요.”4

조조는 즐겁게 알려주었다.

“경도 알 만한 거야.”

진궁은 경계하는 기색으로 물었다.

“갑자기 무슨 수수께끼 놀이에요?”

“힌트 하나 더 줄게. 오경五經 중에 있어.”5

《시경》에서 찾으라면 어렵지는 않았다. 가장 유명한 것을 대고 치워 버리려는 듯 재빨리 대답했다.

“〈도요桃夭〉.”

조조는 쉽게 놓아 주지 않았다.

“맞춘 김에 한 번 읊어 봐.”

결국 진궁은 체념하고 시를 외웠다.

“복숭아나무 소담하고…… 꽃이 곱게 피었네. 아가씨가 시집가니 그 집안이 화목하리라.”6

1절만 읊고 멈추자 조조가 재촉했다.

“뭔가 느껴지는 게 없어?”

“없는데요.”

“그렇게 성의 없이 대답하지 말고.”

“결혼 축하 노래잖아요. 이걸 왜 나한테 시켜요?”

조조가 히죽거렸다.

“경의 딸이 결혼했으니까.”

“……”

진궁은 말을 잇지 못하다가 한참 만에 중얼거렸다.

“참최복 입을 아비도 없는데7 시집에서 박대는 안 당하려나.”

조조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으스대었다.

“고가 중매를 섰는데8 누가 감히.”

진궁은 복숭아 한 조각을 집어서 입에 넣었다. 질긴 고기라도 되는 것처럼 오래 씹다가 천천히 삼키고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복숭아가 다네요.”


(2019-08-21 16:19)

  1. 《예기》 〈곡례〉에 신분별로 참외를 차려 내는 방법이 나와 있는데, 여기에서는 복숭아로 날조했습니다.

    • 천자: 칼질 세 번에 고운 베로 덮기
    • 제후: 칼질 두 번에 거친 베로 덮기
    • 대부: 베로 덮지 않은 채로 주기
    • 사: 꼭지만 따내고 주기

  2. 서인에게는 알아서 이로 깨물어 먹으라고 통째로 줍니다. 😭 

  3. 조조는 〈맥상상〉과 〈기출창〉 등의 작품에서 서왕모를 만나는 환상을 노래했다고 합니다. 서왕모의 대표 아이템은 역시 곤륜산 복숭아지요. 🍑 

  4. 진궁에게 예술가 취미를 주지 않겠습니다… 

  5. 4서3경은 성리학에서 성립된 개념이며 한대에는 5경이었습니다. 

  6. 桃之夭夭、灼灼其華。之子于歸、宜其室家。 

  7. 한대에는 친족의 친소 관계를 (촌수가 아닌) 상복의 등급으로 표시했습니다. 상복의 등급은 참최>재최>대공>소공>시마 다섯 단계로, 아버지가 죽었을 때 참최복을 입습니다. 그런데 《순자》 〈예론〉에 따르면 형을 받은 죄인이 죽었을 때는 상복을 입는 예절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진궁이 죽어도 진궁의 딸은 참최복을 입을 수 없습니다. 😨 기원전 3세기의 규범이 기원후 3세기에 철저하게 지켜졌을 것 같지는 않지만 써 먹으면 재미있으며 특히 진궁은 제사를 잇는 것을 중시하는 유교맨이니까요. 

  8. 진궁이 죽은 뒤 조조가 그의 딸을 시집보내주었다는 이야기는 《삼국지·위서》 〈장막전〉에 나옵니다. 진궁에 대한 기록은 대부분 주석에 나오는데 이 일화는 무려 본문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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