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징벌
건안8년 가을 9월, 허도에서.
“어제 보내준 옷은 왜 안 입었어?”
조조는 지난여름 진궁의 딸을 위한 혼수를 마련할 때 비단 몇 필을 따로 빼어 진궁에게 줄 옷을 짓게 했었다. 재단부터 자수까지 공들여서 몇 달이 걸렸는데 옷걸이에 걸려만 있는 것이 섭섭했다.
“옷이 많이 길더라고요.”
당연한 일이었다. 바닥에 끌리는 옷자락과 펄럭이는 소매1가 우아한 차림의 기본이니까. 진궁의 불만은 엉뚱한 데 있었다.
“걸을 때 자꾸 지팡이에 걸려서요.”
조조가 듣기에는 하찮은 핑계라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공대가 걸어 다닐 필요가 있어? 여기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되는데.”
진궁은 뜻밖에도 거칠게 대꾸했다.
“그렇게 되면 여기에 내가 앉아 있으나 목석을 깎아서 앉혀 놓으나 마찬가지죠.”
심지어 더욱 심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공公한테 살아 있는 진궁이 필요하긴 한가요?”
조조는 당황했다.
“공대, 그런 말 안 하기로 했잖아?”
명시적으로 약속한 적이 없었지만, 조조는 진궁이 장료의 손에 죽는다는 선택지를 포기했을 때 합의가 되었다고 제멋대로 믿었다.
“공公이 내가 살아 있기를 바라는지 아닌지 모르겠어요.”
조조는 일단 진궁을 달래기 위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내가 공대를 얼마나 귀여워하는데.”
진궁도 덩달아 미소를 지으면서 받아쳤다.
“그러면 내가 걷는 것도 귀여워하면 되겠네요.”
조조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고 한쪽 발을 자르게 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떤 모습인지 똑바로 바라볼 생각은 없었다. 그동안 몇 번 안 되는 일이었지만 짧게 자른 옷자락 밑으로 하나뿐인 발이 드러나는 것만으로도 거북했다. 길고 두꺼운 옷자락으로 덮어 놓기라도 해야 그나마 마음이 편했다.
조조에게 필요한 것은 진궁이 도망칠 수 없다는 확신이었다. 물론 지팡이를 짚고 걷는 걸음으로 달아날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가 걷는다는 가능성만으로도 불안했다. 자기 앞에서 한 발짝이라도 몸을 피하는 것을 허락하기 싫었다. 이렇게 된 것은 당초에 자기를 배반하고 떠났던 진궁의 잘못이었다.
“귀엽게 굴어야 귀여워하지.”
진궁은 코웃음을 쳤다. 조조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아예 못 걷게 한 것도 아니잖아? 고孤가 안 오는 날에는 봐줄 테니까 마음대로 해.”
자기가 진궁의 지팡이를 빼앗아가서 석 달 동안이나 돌려주지 않은 적이 있다는 사실은 당연히 진작에 잊었다. 진궁이 한숨을 쉬고 말했다.
“형여의 몸이 감히 인간 대접을 해 달라고는 못 하겠는데요, 그래도 목석 인형으로 취급받는 건 못 견디겠어요.”
조조는 이해가 가지 않아서 따졌다.
“왜 그따위로 말해? 고孤가 심한 짓이라도 했어? 고작 옷 한 벌 입는 걸 가지고 뭐 때문에 그렇게 투정을 부려?”
진궁은 대답하는 대신 왼쪽 무릎을 세우고 겉옷과 속바지를 걷어 올렸다. 진궁이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지 알아차린 조조는 재빨리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진궁의 몸에서 그곳만은 피하고 싶었다.
“전장에서 더한 꼴도 보셨을 분이 왜 그러세요? 눈 뜨고 못 볼 짓을 했다는 건 아시나 봐요.”
조조는 진궁을 외면한 채로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너 지금 굉장히 무례하다.”
진궁은 또 코웃음을 쳤다.
“공公이 예를 말할 때가 다 있네요.”
걷었던 바짓단을 펴고 옷매무새를 정돈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무슨 벌을 내리실 건가요? 또 지팡이 가져가실래요?”
조금 전에 아예 못 걷게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해 놓고 지팡이를 압수하면 비웃음을 살 것이 뻔했다. 조조는 다른 방법을 궁리했다. 굶기거나 때리는 것은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집필이나 접견이나 외출은 처음부터 허락하지 않았으니 금지한들 벌이 되지 못했다. 너덧 권 있는 책이라도 압수할까 했지만, 어차피 다 조조 자신이 빌려준 것이었고 무엇보다 내면의 독서인이 그것만은 안 된다고 비명을 질렀다.
결국 조조가 생각해 낸 벌은 시시했다.
“닷새 뒤에 고孤가 다시 올 때까지 매일 저 옷만 입어.”
진궁의 표정을 보니 시시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오늘부터요?”
“지금부터.”
진궁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직접 일어나서 실내용 지팡이를 짚고 옷을 가지러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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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잡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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