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끈질긴 사람들
건안9년 봄 2월, 업 근처에서.
진궁은 침상에서 배를 바닥에 대고 엎드린 채로 고개를 들어 조조에게 인사했다. 조조가 진궁을 나무랐다.
“공대, 그게 주인을 맞는 태도야?”
진궁은 찡그리며 대답했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요.”1
그런 변명을 들어줄지 말지는 주인의 마음에 달려 있었다. 위 영공이 총애한 미자하가 먹던 복숭아를 영공에게 주고 영공의 수레를 몰래 탄 것이 처음에는 죄가 되지 않았다가 나중에 죄가 되었던 것처럼.2 그리고 조조의 눈에 진궁은 아직 귀여웠으므로 변명을 들어주기로 했다.
“의학서를 보니까 자주 엎드려 있으래요.”3
그러고 보니 진궁은 요즘 의학서와 양생서를 즐겨 읽고 있었다. 조조는 진궁이 건강하게 살려는 의욕을 보이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진궁이 알아서 몸을 챙기면 의사 같은 외부인을 드나들게 할 일도 적어져서 안심이 되었다.
조조는 진궁의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 그가 좋아할 만한 소식을 전했다.
“순공달이 경卿을 만나 보고 싶다는데.”
진궁이 끙끙거리는 것을 보니 허리가 아주 아픈 모양이었다.
“순공달은 경卿이 싫다면 거절해도 괜찮다고 했어.”
“내가 무슨 권한이 있어서 누구를 만날지 말지를 결정하겠어요? 공公이 정해 주세요.”
조조는 진궁의 목소리에 힘이 없는 것이 안쓰러워서 선물을 주는 겸 허락하기로 했다.
“그럼 만나 봐.”
진궁은 화들짝 놀라서 물었다.
“다른 사람 만나지 말라고 가둬 놓은 거 아니에요? 아무나 만나게 해도 괜찮아요?”
“아무나가 아니고 순공달이니까.”
“내가 순문약하고 했던 것처럼 그 사람하고 작당해서 일을 벌이면 어쩌려고요?”
조조가 웃으면서 되물었다.
“공대, 고孤가 같은 수법에 두 번 넘어갈 것 같아?”
“설마요.”
진궁은 풀이 죽어서 대답했다.
“공公이 하라는 대로 할게요.”
진궁이 생각만큼 반색하지 않아서 김이 새기는 했지만, 조조는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물론 조조가 믿을 만한 사람—을 만나면 진궁의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는 이유도 있지만, 지금까지의 오랜 경험을 통해 순유의 의견은 일단 듣는 것이 이롭다는 사실을 터득했기 때문이기도 했다.4
순유는 진궁을 방문하기 전에 알謁5을 먼저 보내어 깍듯이 예를 갖추었다.
진궁은 마루에 걸터앉은 채로 순유를 맞으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차피 온전하지 못한 몸이니까, 예의를 못 차려도 그러려니 하세요. 옛날에 군사軍師께 진 포로가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하러 오셨다면 마음껏 보시고요.”
순유는 진궁과 적당히 사이를 두고 나란히 앉아서 부드럽게 말했다.
“이쪽을 봐주셔야 유攸가 선생의 얼굴을 뵐 수 있을 것 같네요.”
진궁은 마지못해 고개를 돌려 순유를 보았다. 순유는 진궁이 조조를 배신하고 반란을 일으킨 뒤에 조조의 부하가 되었으므로 두 사람은 함께 일한 적이 없었다. 진궁은 순유의 존재를 적군의 참모로만 파악했었고 직접 대면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젊은 숙부인 순욱과 닮았지만, 그보다 동그랗고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진궁은 다시 순유를 외면하며 물었다.
“바쁘실 분께서 고작 이런 용건으로 오신 건 아니겠죠?”
순유는 즉시 대답했다.
“선생을 뵙게 되면 여쭤보고 싶은 게 있었어요.”
진궁은 딱딱하게 말했다.
“하문하시면 받을게요.”
순유는 진궁이 가장 듣기 싫어할 화제를 꺼냈다.
“6년 전에, 선생이 하비에 계셨을 때 말이에요.”
조조의 군대가 몇 달째 하비성을 포위하면서 지지부진할 때 수공으로 하비성을 깨뜨린 것이 순유와 곽가였다.
“그때 이쪽에선 선생이 대책을 완전히 마련하기 전에 빨리 치는 게 관건이었죠. 선생이 책략을 정비하면 우리가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거든요.”6
“……”
“그때는 우리 쪽에 운이 따랐지만, 만약에 선생의 작전이 완성되었다면 어떤 모양이었을지가 지금도 가끔 궁금해요.”
진궁은 호흡을 고르게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패장이 감히 논할 수 있는 게 아니네요.”
순유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앉으며 말했다.
“여봉선이 선생의 말을 안 들어서 포로가 된 거죠. 혹시 알아요? 이 기회에 선생이 유攸의 스승이 되실지.7”
“군사軍師의 지략은 물론 한신에 비길 수 있겠지만, 필부匹夫……도 못 되는 형여刑餘의 몸은 광무군이 아니랍니다.”
“유攸가 여쭤보고 싶은 건 정말 간단한 거예요. 하비성에 물이 안 찼다면 어떻게 막으려고 하셨어요?”
진궁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기억이 안 나요.”
“그러면 지금 새로 생각해 봐요. 선생이 광무군이 못 된다고 치더라도, 천 번을 생각하면 그중에서 한 번은 건질 게 나온다고 하잖아요.8”
순유는 침착하고 다정했다.
“여기에 6년을 계셨으니까, 그동안 가슴속9에서 벌여 본 전쟁이 수천 건은 될 텐데.”
진궁은 목이 메었는지 한참 입술만 달싹거린 끝에 간신히 말을 했다.
“죄송하지만, 형여刑餘의 몸이 아직 인간의 마음을 다 못 버려서요.”
가슴을 누르는 손이 떨리고 있었다. 눈에 고인 눈물은 기어이 흘러내렸다.
“이렇게 사나운 꼴을 보여드린 거로도 아직 만족을 못 하시겠어요? 그럼 더 가지고 노세요. 형여刑餘의 몸이 감히 뭘 어쩌겠어요.”
“미안해요. 선생을 괴롭히려는 건 아니었어요.”
순유는 진궁이 조금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얼마 후 진궁은 양손을 무릎에 얹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여기 높이 둘러쳐진 벽이 보이시죠? 우물 같지 않아요? 군사軍師께서 이 안에 물을 채워 주시면 감사하게 받을 텐데요.”
순유는 침착하고 다정하고 끈질겼다.
“유攸의 질문에 대답해 주시면, 유攸가 선생이 원하는 걸 드릴 수 있어요.”
그리고 더욱더 솔깃한 조건을 추가했다.
“그것도 이 자리에서 당장.”
진궁은 미심쩍어하며 물었다.
“여기를 물바다로 만드시겠다고요?”
“그렇게는 못 하고요, 선생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그거 있잖아요.”
“그걸 어떻게 지금 주실 건데요?”
순유는 뿌듯하게 말했다.
“조 공의 가죽 주머니10만큼은 못하겠지만, 유攸도 항상 도구를 가지고 다니거든요.”
진궁은 기가 차서 웃고 말았다.
“누가 동탁한테 덤빈 분이 아니랄까 봐.”11
순유는 겸손하게 사양하고 물었다.
“그거야말로 진짜 옛날이야기죠. 어쩌실래요?”
“군사軍師께 받는 것도 영광이긴 하겠네요.”
진궁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조 공의 포로는 역시 조 공께서 명령하시는 거로 받아야겠어요.”
“역시 이상은 높으시네요. 하지만 책략을 너무 오래 끄시면 유攸가 먼저 선생을 칠지도 몰라요.”
“그걸 미리 알려주시고, 참 친절하시네요.”
“별말씀을요.”
어쨌든 대화의 끝만 놓고 보면 진궁이 두려워하던 것만큼 나쁘지는 않았다.
다음번에 진궁을 찾아간 조조는 더욱 어이가 없었다. 진궁이 가만히 엎드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배를 바닥에 댄 채로 가슴과 허벅지를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12
“뭐하는 거야?”
“척추 운동이요.”
조조는 짜증을 냈다.
“그걸 왜 하필 고孤가 올 때 하고 있는 건데?”
진궁은 천연덕스럽게 되받았다.
“공公도 같이 하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올해 나이로 쉰이시잖아요. 허리 안 뻐근하세요?”
조조는 자존심이 상했다.
“진공대, 내가 삐치기 전에 일어나라.”
진궁은 쿡쿡거리면서 일어나 앉았다. 진궁이 기운이 넘치는 것은 보기 좋으면서도 왠지 수상했다. 조조는 이런 기분을 전에도 느껴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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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에 나오는 그 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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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유는 조조의 군사 중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낸 인물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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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전에 보내는 명함 같은 것. 나중에 더 자세하게 쓰기로 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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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성 공략 당시 순유와 곽가의 말. “진궁은 지략이 있지만 느립니다. 여포의 예기가 아직 회복되지 않고 진궁의 전술이 아직 결정되지 않은 지금 당장 신속하게 공격하면 여포를 뽑아버릴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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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이 성안군 진여를 격파한 뒤 그의 참모 광무군 이좌거에게 한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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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군 이좌거가 한신에게 계책을 내면서 겸손하게 꺼낸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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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이 아닙니다. 한나라 사람들은 생각을 머리에서 한다는 인식이 없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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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위서》 〈무제기〉 주석 《조만전》. “몸에는 작은 가죽 주머니를 차고 수건과 잡다한 물건을 잔뜩 넣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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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유는 젊은 시절 동탁 암살을 모의한 적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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