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랑’과 ‘주랑’, 두 미인의 엇갈린 운명
주랑周郎의 변천사
목차
미남 2인조
삼국지 세계관에서 이름을 날린 이인조를 꼽는다면 ‘단금지교’로 유명한 손책과 주유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블로그에서도 이미 오래전에 ‘총각지호’로 이들의 어린 시절 인연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손책과 주유는 재능과 인품뿐만 아니라 미모도 출중했습니다. 역사책 《삼국지》 본문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손책의 사람 됨됨이는 얼굴이 아름답고 유머감각이 뛰어났으며 활달한 성품에 남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사람을 부리는 데 능해서, 병사든 민간인이든 일단 그를 만나면 백이면 백 진심을 다하고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다.1
《삼국지》 권46 오지1 〈손책전〉 본문
손책이 얼마나 잘생겼으면 사람 됨됨이를 논하는데 얼굴 이야기부터 나왔을까요? 주유의 경우도 초기 이력을 서술하는 가운데 갑작스럽게 용모 칭찬이 나옵니다.
주유는 키가 크고 건장하고 (뛰어난) 용모를 가지고 있었다.2
《삼국지》 권54 오지9 〈주유전〉 본문
즉, 이들의 프로필을 작성할 때 미모는 빠질 수 없는 속성이었던 것입니다. 본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손책은 아름다운 얼굴[美姿顔], 주유는 건장한 육체[長壯有姿貌]를 주로 자랑한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얼굴과 성격과 재주를 모두 갖춘 절친으로 장강 동남쪽에서 명성을 떨쳤습니다. 《삼국지》에 따르면 사람들은 이들을 손랑과 주랑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 글에서는 이 ‘손랑’과 ‘주랑’이라는 칭호의 쓰임새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삼국지: 랑의 기원
손랑의 쓰임
우선 《삼국지》에서 ‘손랑’이라는 말은 다섯 번 쓰였고, 모두 〈손책전〉에 나왔습니다.
일단 진수가 쓴 본문에는 한 번 나옵니다.
원술은 늘 탄식했다. “만약 나에게 손랑 같은 자식이 있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텐데!”3
나머지 네 번은 배송지가 주석을 달면서 인용한 《강표전》에 나옵니다.
어떤 이가 (손책을 거짓으로?) 배반하고 착융에게 알렸다. “손랑은 화살에 맞아서 이미 죽었습니다.”4
그래서 손책은 착융의 군영까지 가서 주변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외치게 했다. “손랑이 과연 어떤가!”5
손책은 이때 나이가 적어서, 비록 (절충교위라는) 직함이 있었으나 병사와 민간인은 모두 그를 손랑이라고 불렀다.6
백성은 손랑이 왔다는 소식을 듣자 모두 (군대를 피해) 혼비백산했다.7
손책은 젊은 나이로 인해 ‘손랑’이라고 불렸습니다. 원술이 손책을 칭찬할 때 ‘손랑’을 쓴 것을 보면 긍정적인 의미 같은데, 손책의 적인 착융에게 말할 때나 손책의 군대를 두려워해서 달아날 때도 그를 ‘손랑’으로 지칭한 것을 보면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쓰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즉, 사람들은 손책이 젊었기 때문에 그를 ‘손랑’이라고 불렀고, ‘손랑’은 그 자체로 칭찬이나 비난을 함축하기보다는 여러 상황에서 고루 쓰였습니다.
주랑의 쓰임
다음으로 ‘주랑’은 《삼국지》 〈주유전〉 본문에 두 번 쓰였습니다.
주유는 이때 스물네 살로, 오 지역에서는 모두 그를 주랑이라고 불렀다.8
주유는 젊은 시절 음악에 몰두해서, 술 석 잔을 마시고 난 후에도 틀린 음을 들으면 반드시 알아차렸고, 알아차리면 반드시 돌아보았다. 그래서 당시에 “악곡을 틀리면 주랑이 돌아본다.”라는 밈이 생겼다.9
‘주랑’ 역시 ‘손랑’과 마찬가지로 주유의 젊은 나이를 강조하는 칭호로 보입니다.
심랑과 육랑
이렇게 손책과 주유는 ‘손랑’과 ‘주랑’으로 유명했습니다. 하지만 ‘○랑’이라는 호칭이 이 둘에게만 쓰인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삼국지·오지》에서는 심우라는 인물이 어렸을 때 화흠에게 ‘심랑’이라고 불린 일화가 나옵니다.
(심우가) 열한 살일 때, 화흠이 풍속을 살피러 순행하다가 그를 보고 남다르게 여겨서 불렀다. “심랑, 수레에 올라 이야기할 수 있겠소?”10
《삼국지》 권47 오지2 〈손권전〉 주석 《오록》
또 다른 사례로는 ‘육적회귤’ 고사가 있습니다. 이 일화에서 원술은 육적을 ‘육랑’이라고 불렀습니다.
육적이 여섯 살 때 구강군에서 원술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원술이 귤을 내어오자 육적은 세 알을 품고 가다가 작별 인사로 절을 올릴 때 그만 땅에 떨어뜨렸다. 원술이 그에게 말했다. “육랑은 손님으로 와 놓고 귤을 품었나요?”11
《삼국지》 권57 오지12 〈육적전〉 본문
이렇게 여섯 살, 열한 살 난 남자아이들도 격식을 차리는 자리에서 ‘○랑’이라고 불렸습니다.
‘○랑’의 사례를 더 찾기 위해 《삼국지》(백납본) 전체에서 “郎” 한 글자를 검색하면 총 434건이 나옵니다. “식전고적”에서는 검색어의 이체자까지 자동으로 찾아 주므로, 郞·郎의 차이로 인해 누락된 용례는 없을 것입니다. 이 434건의 결과에서 ‘중랑장’, ‘낭중’ 등의 관직명을 제외하고 하나하나 확인해 보면 ‘○랑’이라는 호칭으로 불린 인물은 위에서 언급한 손책, 주유, 심우, 육적 네 사람입니다.
랑의 의미
그렇다면 ‘○랑’의 ‘랑’은 과연 무슨 뜻이었을까요? 랑은 원래 한나라에서 황궁의 출입문 관리 등 각종 사무를 맡은 관직으로, 《한서》 〈백관공경표〉에 따르면 의랑, 중랑, 시랑, 낭중 네 직급이 있었습니다. 관직 등급은 높지 않았지만 고급 관료 테크트리를 탈 때 중요한 코스였습니다. 후한 말에도 마찬가지라서, 조조는 의랑을 통해 기도위로 승진했고 원술은 낭중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손책, 주유, 심우, 육적은 모두 랑이라는 관직에 있지 않았는데도 ‘○랑’이라고 불렸습니다. 여기에서 ‘랑’은 젊은 남자에 대한 지칭어 혹은 호칭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장님’이 중년 남자를 대접해서 부르는 말로도 쓰이듯, 《삼국지》의 시대에 ‘랑’은 소년(6세, 11세)과 청년(24세) 남자를 대접해서 부르는 말로도 쓰이게 된 것입니다. 이 용례가 《삼국지》에서 《오지》에만 나오는 것으로 볼 때, 장강 하류 양주 지역에서 쓰기 시작한 말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후로 ‘랑’은 차츰 일반명사가 되었고, 현대한국어 ‘신랑’에도 흔적을 남겼습니다.
지금까지 역사책 《삼국지》에 나온 ‘○랑’이라는 호칭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소설책 《삼국지통속연의》로 가 봅시다.
삼국지통속연의: 주랑은 주유의 대명사로, 손랑은…?
손랑의 작은 변화
“연의”에도 ‘손랑’과 ‘주랑’이 등장할까요? 우선 《삼국지통속연의》(가정본)에서 ‘손랑’은 모두 4회 출현합니다. 4건 모두 “정사”에 이미 나온 내용입니다. 즉, 원술이 손랑을 칭찬하고, 손랑이 착융을 속이고, 백성이 손책을 손랑이라고 칭하고, 손랑의 소문을 듣고 달아납니다.
이 중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두 번째 사건입니다. 《삼국지》에서 손책은 자신의 입으로 ‘손랑’을 칭한 적이 없었지만, 《삼국지통속연의》에서는 다릅니다.
손책의 군영 뒤에서 복병이 일어나서 군마가 쏟아져 나왔다. 손책은 소리 높여 외쳤다. “손랑이 여기 있다!”12
《삼국지통속연의》 권3 30회
이 장면에서 ‘연인 장익덕’과 ‘상산 조자룡’이 생각납니다. 아무래도 《삼국지통속연의》를 지은 나본은 용맹한 장수가 선봉에 서서 자신을 별명으로 칭하는 모습을 주된 이미지로 떠올린 것 같습니다.
주랑의 큰 변화
‘손랑’의 쓰임은 “정사”와 “연의”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3인칭 하나가 1인칭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적어도 “정사”에 있던 ‘손랑’의 맥락은 “연의”에서 모두 유지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주랑’은 어떨까요? 놀랍게도 《삼국지통속연의》에서 무려 35회나 등장합니다. 참고로 검색 결과는 가정원년각본과 모종강판이 서로 다른데, 이 글에서는 “식전고적”에서 제공하는 가정본을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주랑’의 용례 35건을 이 글에서 다 살펴보기에는 시간과 공간이 부족합니다. 전체 검색 결과가 궁금하시면 아래의 링크로 들어가 보세요.
《삼국지통속연의》에서 ‘주랑’이 사용된 맥락은 모두 《삼국지》에 없던 것들입니다. 애초에 《삼국지》에서 ‘주랑’이 직접 인용된 문장은 “악곡을 틀리면 주랑이 돌아본다.” 하나뿐인데, 이 밈은 《삼국지통속연의》에서 삭제되었습니다. 그러니 “연의”에서 주유를 ‘주랑’이라고 칭한 것은 모두 나본의 설정입니다.
우선 ‘주랑’이 사용된 첫 번째 맥락을 살펴봅시다. 손책이 임종할 때 어머니에게 당부하는 장면입니다.
다만 안의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장소에게 물으시면 되고, 밖의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주랑에게 물으시면 됩니다.13
《삼국지통속연의》 권6 58회
《삼국지통속연의》에서 ‘주랑’은 손책이 세상을 떠나면서 비로소 등장한 것입니다. 왠지 모르게 슬픕니다. 😭
아무튼 이후로 여러 사람들이 주유를 ‘주랑’이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적벽대전을 앞두고 정보는 주유를 대장의 그릇으로 인정했습니다.
정보는 충격을 받았다. “나는 원래 주랑이 나약하다고 업신여기고 장수가 되기에 부족하다고 여겼었다. 오늘 이렇게 중대사를 논의해 보니 진정한 장수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 내가 무엇 때문에 복종하지 않겠는가?”14
《삼국지통속연의》 권9 88회
심지어 적군의 우두머리인 조조조차도 주유를 가리켜 ‘주랑’이라고 했습니다.
조조는 노했다. “군대 훈련이 숙달되면 수급이 주랑에게 바쳐질 것이다.”15
《삼국지통속연의》 권9 90회
방통 또한 조조 앞에서 주유를 (거짓으로) 비난할 때 ‘주랑’을 썼습니다.
(방통은) 강남을 가리키며 말했다. “주랑아, 주랑아, 네가 망하는 건 기정사실이다.”16
《삼국지통속연의》 권10
제갈량이 형주 땅을 차지하기 위해 노숙에게 윽박지를 때도 주유는 ‘주랑’이었습니다.
만약 내가 동남풍을 빌려오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면 너희 주랑이 어디 감히 반쪽짜리 전략이나마 펼칠 수 있었겠느냐?
《삼국지통속연의》 권11
이렇게 ‘주랑’은 칭찬의 대상도 되고 비난의 대상도 되었습니다. ‘주랑’이라는 말 자체에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함축이 따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삼국지통속연의》를 좀 더 읽어 보면, 이릉대전에서조차 ‘주랑’은 여러 차례 호출되었습니다. 심지어 손권조차 주유를, 그것도 주유가 죽고 십수 년이 지난 뒤까지도 ‘주랑’이라고 칭했습니다. 관우와 장비가 죽은 뒤 유비가 손권을 공격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들은 손권은 탄식했습니다.
앞에는 주랑이 있었고, 뒤에는 노숙과 여몽이 그를 이었다. 이젠 여몽도 죽었으니 고와 함께 근심을 나눌 이가 없다.17
《삼국지통속연의》 권17 163회
이 한탄을 들은 감택이 육손을 추천할 때도 주유는 ‘주랑’입니다.
“그의 재능은 주랑보다 아래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전에 관 공을 격파한 것도 다 백언의 전략이었습니다.”18
《삼국지통속연의》 권17 166회
심지어 적진의 마량조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육손의 재능은 주랑에 못지않으니 적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19
《삼국지통속연의》 권17 166회
결국 한 번 관 공은 영원한 관 공이고, 한 번 주랑은 영원한 주랑입니다. 아군이든 적군이든 가리지 않습니다. 감택은 적군의 관우를 ‘관 공’이라고 칭했고, 마량은 적군의 주유를 ‘주랑’이라고 칭했습니다. 이것이 《삼국지통속연의》에서 호칭어를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매번 맥락을 고려해서 다른 호칭어를 사용하면 독자가 헷갈릴 수 있으므로, 한 사람의 호칭을 가능한 한 통일한 것입니다.
(아마도) 요시카와 에이지: 미주랑의 탄생
19세기까지 중국에 없던 미주랑
지금까지 《삼국지》와 《삼국지통속연의》에서 ‘손랑’과 ‘주랑’의 쓰임을 살펴보았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한 가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주랑은 언제 나오나요?”
절대로 아가 일부러 숨긴 것이 아닙니다. 그저 “정사”에도 “연의”에도 ‘미주랑’이 없었을 뿐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디지털로 구축된 중국 고전문헌으로 접근 가능한 모든 범위를 통틀어도 ‘미주랑’을 한 건도 찾지 못했습니다.
“식전고적” 전체에서 ‘미주랑’을 검색해 보면 5건이 나오기는 합니다.
이 다섯 건 중 중복을 제외하고 남는 세 문장을 하나씩 검토해 보겠습니다.
- “河豚正美周郎病”은 “正美”와 “周郎”으로 끊어 읽어야 할 것입니다.
- “登場憐帝子,顧曲美周郎”은 얼핏 보아 “顧曲”과 “美周郎”으로 끊어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원문 이미지를 확인해 보면 美(아름다울 미)는 羨(흠모할 선)의 OCR 오류입니다.
- “…資美周郎顧誤今誰及…” 또한 마찬가지로 OCR 오류입니다.
“식전고적”에 없다면 혹시 “Chinese Text Project”는 어떨까요? 여기에서는 데이터위키 “周瑜” 페이지에서 영어 위키백과 문서를 링크하고 있습니다. 해당 문서에 적힌 문장을 읽어 봅시다.
고이데 후미히코 등의 작가는 ‘미주랑’이 요시카와 에이지 같은 일본 이야기꾼이 나중에 만들어 낸 말이라고 여긴다.20
영어 위키백과 “Zhou Yu” 문서
결국 중국 전통 텍스트에서는 ‘미주랑’ 세 글자가 한 단어를 이루는 사례를 단 한 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20세기에 일본에서 생긴 미주랑
‘미주랑’이 확실히 나오는 작품은, 일본 작가 요시카와 에이지(1892–1962)의 《삼국지》입니다. 이 소설은 1939년부터 1943년까지 신문에 연재되었고, 앞서 살펴보았듯이 ‘미주랑’의 시초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오 지역 사람들은 이 얼굴이 발그레한 젊은 장군을 군중의 미주랑美周郎이라 부르거나, 주랑周郎 주랑周郎 하며 떠받들곤 했다.21
吉川英治, 《三国志·赤壁の巻》
요시카와 에이지는 왜 ‘주랑’ 앞에 ‘미’를 붙였을까요? 일본에는 주유를 특별한 미남으로 해석하는 전통이 있었을까요? 흥미롭게도, 에도시대(1603–1868) 일본에 《삼국지통속연의》가 전래된 후 나온 창작물에서는 오히려 주유가 털이 부숭부숭한 추남으로 그려졌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꽃미남 주유의 이미지는 19세기 말을 전후로 해서 형성된 것 같습니다.
왜 미손랑이 아닌 미주랑인가?
여기에서 아가 궁금한 것은 왜 주유가 꽃미남의 대표가 되었는지입니다. 처음에 살펴보았듯이 역사책 《삼국지》에서는 손책과 주유의 용모를 모두 칭찬했고, 손책은 아름다운 얼굴, 주유는 건장한 몸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이미지는 정반대가 되었습니다. 주유는 “정사”와 “연의”의 서술을 뛰어넘어 삼국지 세계관에서 유일무이한 최고 미남으로 꼽힙니다. 반면 손책이 미남이었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손책의 얼굴을 곱상하게 그리면서 주유의 몸을 울끈불끈하게 그린다면 “캐붕”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이런 이미지가 형성된 데는 요시카와 에이지가 붙인 것으로 추정되는 ‘미주랑’이라는 별명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미손랑’이 안 생긴 것은 아쉽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주랑’을 마냥 근본없는 창작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미주랑’이라는 말은 바로 ‘주랑’ 위에 세워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랑’은 나본의 《삼국지통속연의》로 인해 주유를 대표하는 별명이 되었습니다. 나본이 ‘주랑’에 꽂힌 까닭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나본이 처음은 아닙니다. ‘주랑’이라는 칭호는 송대의 문학 작품에서 이미 찾아볼 수 있고, 송나라 문인들은 주유를 풍류와 신선의 아이콘으로 활용했습니다. 여기에서 수당시대로, 남북조시대로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하나의 계보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이미 글이 너무 길어졌으므로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그래도 손책의 고운 얼굴과 주유의 튼튼한 몸을 알아주세요!
원문 및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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策爲人,美姿顔,好笑語,性闊達聽受,善於用人,是以士民見者,莫不盡心,樂爲致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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瑜長壯有姿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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術常歎曰:“使術有子如孫郎,死復何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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或叛告融曰:“孫郎被箭已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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策因往到融營下,令左右大呼曰:“孫郎竟云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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策時年少,雖有位號,而士民皆呼爲孫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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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姓聞孫郎至,皆失魂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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瑜時年二十四,吳中皆呼爲周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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瑜少精意於音樂,雖三爵之後,其闕誤,瑜必知之,知之必顧,故時人謡曰:“曲有誤,周郎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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年十一,華歆行風俗,見而異之,因呼曰:“沈郎,可登車語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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績年六歲,於九江見袁術。術出橘,績懷三枚,去,拜辭墮地,術謂曰:“陸郎作賓客而懷橘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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策營背後伏兵起,軍馬擁出,策高叫一聲:孫郎在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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但内事不决,可問張昭,外事不决,可問周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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普大驚曰:吾素欺周郎懦弱,不足爲將,今日論大事如此,真將材也,吾如何不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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操怒曰:軍若練熟,首級獻於周郎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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指江南而言曰:周郎,周郎,尅期必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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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有周郎,後有魯肅、吕蒙繼之。今吕蒙已亡,無人與孤分憂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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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在周郎之下。前破關公,皆伯言之謀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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陸遜之才,不亞周郎,未可輕敵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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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 Japanese writers such as Fumihiko Koide believe that this was a later invention by Japanese storytellers such as Eiji Yoshikaw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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だから当時、呉の人はこの年少紅顔の将軍を、軍中の美周郎と呼んだり、周郎周郎と持てはやしたりしたものだっ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