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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관도

— 건안5년 가을 8월, 관도에서.

허도에서 순욱이 보낸 답장이 왔다. ❡ ‘공의 역량은 원소보다 뛰어나므로 해내실 수 있습니다.’1 ❡ 전황이 안 좋고 군량이 부족하지만 관도에서 결전을 치러야 한다는 말이었다. ❡ ‘그래도 위험하니까 공대는 허도로 보내야겠어.’ ❡ 조조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편지를 끝까지 펼쳐 보자 죽간이 한 권 더 말려 있었다. ❡ 조조는 진궁을 찾아가서 죽간을 내밀었다. ❡ “신작이에요?”2 ❡ “자세히 봐.” ❡ 겉면에 붙은 목판3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진공대에게. 순문약.4 ❡ “이번만이야.” ❡ 진궁은 말없이 죽간을 받았다. ❡...

1-4. 갈 곳이 있는 사람

— 건안5년 여름 6월, 관도에서.

조조가 급하게 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진궁은 뜰에 나와서 걷고 있었다. ❡ “오늘 오실 줄은 몰랐어요.” ❡ 방 안에 있을 때와는 다른 차림이었다. 옷자락이 땅에 끌리지 않도록 짧게 자른 겉옷을 입고1 소매를 걷어붙인 왼팔로 지팡이를 짚었다. ❡ 조조는 숨을 헐떡이며 대답했다. ❡ “잠시 숨어 있으려고.” ❡ “숨기 좋은 곳이긴 하죠.” ❡ 조조가 금지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해도 육형을 받은 사람이 은거하는 곳에 가까이 오려는 사람은 없었을 터였다.2 ❡ “그런데 공公이 숨을 일이 있다는 건 뜻밖인데요.” ❡ 진궁은 다시 걷기...

1-3. 붉어진 얼굴

— 건안5년 봄 정월, 관도에서.

그날 아침은 웬일로 진궁이 시자侍者에게 말을 걸었다. ❡ “조공曹公은 별고 없으신가?” ❡ 이 말을 전해 들은 조조는 진궁이 자기에게 먼저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에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두통도 한결 덜한 듯했다. ❡ ‘저녁에 공대에게 잠깐 들러야겠군.’ ❡ 저녁에 조조는 진궁을 찾아갔다. 시뻘게진 얼굴로 씩씩거리면서. ❡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 “내가 알아도 되는 일인가요?” ❡ 조조는 잠시 망설였다. 진궁이 바깥세상과 접촉하는 것을 막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겸손하게 묻는 것을 ...

1-2. 복날

— 건안4년 여름, 허도에서.

여름의 복일伏日은 겨울의 납일臘日과 더불어 한漢의 2대 명절이다. 이날에 사람들은 모여서 제사를 지내고 먹고 마신다. ❡ 복날이라고 사공부 속관들에게 휴가를 준 조조는 오늘은 때가 안 좋다는 순욱의 만류를 듣지 않고 진궁을 찾아갔다. ❡ 진궁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다. ❡ ‘매일 뜰에 나와서 지팡이를 짚고 걷는 것을 연습한다고 들었는데.’ ❡ “설마 종일 그러고 있었어? 안 더워?” ❡ 속이 반쯤 비칠 만큼 얇은 여름 홑이불 속에서 몸을 뒤척여 등을 돌리는 것이 보였다. ❡ “일어나 봐. 세수 안 하고 머리 ...

1-1. 자살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려서

— 건안3년 12월에 백문루에서 조조가 진궁을 살리는 데 성공한 이야기. 이른바 정사 《삼국지》 기반이지만 《사기》와 《한서》와 《진서》가 더 많이 들어간.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진궁이었다. ❡ “이만 나가서 칼을 받고 군법을 밝히겠습니다.”1 ❡ 조조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이를 악물고 대꾸했다. ❡ 《삼국지·위서》 〈장막전〉 주석 《전략》. 「請出就戮,以明軍法。」 “칼을 받고”는 륙戮의 의역이며, 사실 문장 전체를 더 공손한 말투로 옮기는 것이 맞습니다. ↩

한서팸플릿4 〈미남전〉 서문

주아周雅가 말한다: ❡ 아! 나는 일찌기 서한西漢 사람 한영韓嬰의 《한시외전韓詩外傳》을 읽다가 선비의 다섯 가지 덕목을 논하는 데 이르면 책을 덮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영嬰은 ‘용모가 아름다운 자로서 그 아름다움을 조정을 통솔하고 백성을 돌보는 데 쓰지 않고 도리어 여자들을 유혹하고 욕망을 좇는 데 쓰는 사람’을 꾸짖었으니, 이는 실로 여자들을 유혹하는 남자의 아름다움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은 것이다. 영은 《시詩》를 연구하여 명성을 얻고 태학太學에서 그의 학문을 전수하는 박사博士관이 설치될 만큼 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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