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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포상

— 건안9년 봄 1월, 허도에서.

진궁이 조조와 바둑을 두어 이긴 것은 실력이 아닌 체력 덕이었다. 그는 조조보다 젊었고1 각종 사무로 기력을 빼앗길 일이 없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그에게 유리했다. ❡ 그가 상으로 요구한 것은 ‘조 공 이외의 사람과 대화할 기회’였다. 조조는 뜻밖에도 승낙했다. 어차피 그의 언변에 현혹될 위험이 없이 믿고 보낼 만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 하지만 조조는 심술부리기를 잊지 않았고 포상의 이행은 한참 시간을 끌었다. 조조가 하북으로 원정을 떠나서 새 거처를 만드는 동안 진궁은 추위에 시들어가는 화초를 어루만지며 허도에서...

2-5. 허리를 조심하세요

— 건안8년 겨울 10월, 허도에서.

조조는 마당까지 나온 진궁의 마중을 받으면서도 썩 기쁘지 않았다. 긴 옷자락이 지팡이에 걸려서 못 입겠다더니 잘도 입고 나왔다. 오른손으로 옷자락을 그러쥐고 왼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닷새 내내 저렇게 걷기를 연습한 모양이었다. ❡ 진궁은 조조가 앞서가기를 기다려서 그를 뒤따라 당으로 올라갔다. 조조는 방에 들어가 앉자마자 신경질을 냈다. ❡ “고孤 앞에서는 좀 앉아 있으라니까.” ❡ 뜻밖에 진궁은 고개를 끄덕이고 얌전하게 듣고만 있었다. 조조는 말투를 좀 누그러뜨리고 물었다. ❡ “‘벌’은 어땠어?” ❡ 진궁은 겸연쩍은...

2-4. 징벌

— 건안8년 가을 9월, 허도에서.

“어제 보내준 옷은 왜 안 입었어?” ❡ 조조는 지난여름 진궁의 딸을 위한 혼수를 마련할 때 비단 몇 필을 따로 빼어 진궁에게 줄 옷을 짓게 했었다. 재단부터 자수까지 공들여서 몇 달이 걸렸는데 옷걸이에 걸려만 있는 것이 섭섭했다. ❡ “옷이 많이 길더라고요.” ❡ 당연한 일이었다. 바닥에 끌리는 옷자락과 펄럭이는 소매1가 우아한 차림의 기본이니까. 진궁의 불만은 엉뚱한 데 있었다. ❡ “걸을 때 자꾸 지팡이에 걸려서요.” ❡ 조조가 듣기에는 하찮은 핑계라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 “공대가 걸어 다닐 필요가 있어? 여기 가...

손끝의 감각

군법의 관례대로 참수형을 집행하려고 벌여 놓은 도끼와 받침대1를 치우고 교수대를 설치하는 동안 진궁은 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 목을 매달아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까닭은 뚜렷하지 않았다. 목을 베어 달라는 진궁의 뜻대로 해 주기 싫다는 심술인지, 죽더라도 ‘온전한 몸’을 남기게 해 주려는 배려인지 조조 자신도 알지 못했다. 어쨌든 처형 방법을 바꾼다는 핑계로 조조는 진궁을 잠시 더 살려 둘 수 있었다. ❡ 하지만 시간을 번다고 해서 조조가 기대하던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진궁은 묵묵히 기다리기만 했다. 날붙이를 끈으로 ...

2-3. 복숭아나무 소담하고

— 건안8년 여름 5월, 허도에서.

접시를 덮은 천을 진궁이 걷어내자 반듯하게 잘린 복숭아 여덟 조각이 향을 뿜었다.1 ❡ “분수에 안 맞게 화려한 세팅이네요. 나한텐 그냥 안 썰고 껍질째로 던져 주시면 되는데.”2 ❡ 조조는 진궁이 예법을 들먹이는 것을 못 들은 척하고 말을 돌렸다. ❡ “먹기 전에 잠깐만. 복숭아 하면 떠오르는 시 없어?” ❡ “또 서왕모 나오는 시 쓰셨어요?”3 ❡ “말고, 고전 중에서 찾아봐.” ❡ “시부詩賦 잘 몰라요.”4 ❡ 조조는 즐겁게 알려주었다. ❡ “경卿도 알 만한 거야.” ❡ 진궁은 경계하는 기색으로 물었다. ❡ “갑자기 무슨...

2-2. 상아

— 건안7년 가을 8월, 관도에서.

진궁은 대개 해가 지면 곧바로 침상에 누웠다. 책이라도 읽자고 방을 밝히기 위해서는 시자를 시켜 불을 가져오게 해야 했다. 일단 불을 켜면 시자는 등을 지키면서 떠나지 않았다. 몇 달 전에 고의로 화상을 입고 나서부터 특히 노골적으로 감시하는 것이 더욱 불편했다. 그냥 휘장을 치고 일찍 자는 편이 나았다. ❡ 조조가 대문을 열고 들어와서 방에 불을 켤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보면 잠이 꽤 깊게 들었던 모양이다. 이 인간이 하다 하다 못해 이제는 자는데 찾아와서 덮치려고까지 하나 싶어서 한숨이 나오는데 조조는 입을 활짝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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