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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징벌

— 건안8년 가을 9월, 허도에서.

“어제 보내준 옷은 왜 안 입었어?” ❡ 조조는 지난여름 진궁의 딸을 위한 혼수를 마련할 때 비단 몇 필을 따로 빼어 진궁에게 줄 옷을 짓게 했었다. 재단부터 자수까지 공들여서 몇 달이 걸렸는데 옷걸이에 걸려만 있는 것이 섭섭했다. ❡ “옷이 많이 길더라고요.” ❡ 당연한 일이었다. 바닥에 끌리는 옷자락과 펄럭이는 소매1가 우아한 차림의 기본이니까. 진궁의 불만은 엉뚱한 데 있었다. ❡ “걸을 때 자꾸 지팡이에 걸려서요.” ❡ 조조가 듣기에는 하찮은 핑계라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 “공대가 걸어 다닐 필요가 있어? 여기 가...

손끝의 감각

군법의 관례대로 참수형을 집행하려고 벌여 놓은 도끼와 받침대1를 치우고 교수대를 설치하는 동안 진궁은 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 목을 매달아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까닭은 뚜렷하지 않았다. 목을 베어 달라는 진궁의 뜻대로 해 주기 싫다는 심술인지, 죽더라도 ‘온전한 몸’을 남기게 해 주려는 배려인지 조조 자신도 알지 못했다. 어쨌든 처형 방법을 바꾼다는 핑계로 조조는 진궁을 잠시 더 살려 둘 수 있었다. ❡ 하지만 시간을 번다고 해서 조조가 기대하던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진궁은 묵묵히 기다리기만 했다. 날붙이를 끈으로 ...

2-3. 복숭아나무 소담하고

— 건안8년 여름 5월, 허도에서.

접시를 덮은 천을 진궁이 걷어내자 반듯하게 잘린 복숭아 여덟 조각이 향을 뿜었다.1 ❡ “분수에 안 맞게 화려한 세팅이네요. 나한텐 그냥 안 썰고 껍질째로 던져 주시면 되는데.”2 ❡ 조조는 진궁이 예법을 들먹이는 것을 못 들은 척하고 말을 돌렸다. ❡ “먹기 전에 잠깐만. 복숭아 하면 떠오르는 시 없어?” ❡ “또 서왕모 나오는 시 쓰셨어요?”3 ❡ “말고, 고전 중에서 찾아봐.” ❡ “시부詩賦 잘 몰라요.”4 ❡ 조조는 즐겁게 알려주었다. ❡ “경卿도 알 만한 거야.” ❡ 진궁은 경계하는 기색으로 물었다. ❡ “갑자기 무슨...

2-2. 상아

— 건안7년 가을 8월, 관도에서.

진궁은 대개 해가 지면 곧바로 침상에 누웠다. 책이라도 읽자고 방을 밝히기 위해서는 시자를 시켜 불을 가져오게 해야 했다. 일단 불을 켜면 시자는 등을 지키면서 떠나지 않았다. 몇 달 전에 고의로 화상을 입고 나서부터 특히 노골적으로 감시하는 것이 더욱 불편했다. 그냥 휘장을 치고 일찍 자는 편이 나았다. ❡ 조조가 대문을 열고 들어와서 방에 불을 켤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보면 잠이 꽤 깊게 들었던 모양이다. 이 인간이 하다 하다 못해 이제는 자는데 찾아와서 덮치려고까지 하나 싶어서 한숨이 나오는데 조조는 입을 활짝 벌...

2-1. 바질 향기

— 건안7년 여름 5월, 관도에서.

조조도 처음에는 진궁이 마루에 엎드려 화분에 몰두한 모습이 귀여워서 방해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거의 1분1이 다 되도록 자기가 온 것을 알아차릴 기미가 없자 슬슬 심술이 났다. 조조는 손짓으로 시자를 불러서 몰래 지시를 내리고는 진궁을 불렀다. ❡ “공대.” ❡ 진궁은 그제야 조조의 존재를 깨닫고 몸을 일으켰다. ❡ “언제부터 와 계셨어요?” ❡ 조조는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 “그게 그렇게 좋은가 보지? 고孤가 온 줄도 모르고 말이야.” ❡ 진궁은 전혀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 “나륵羅勒2을 처음 키워 봐서...

1-8. 선조에게 지내는 제사

— 건안7년 봄 정월, 허도에서.

조조는 새해에 치러야 할 공무와 사무를 다 치르고 마침내 진궁을 찾아가서 의기양양하게 물었다. ❡ “어느 쪽이야?” ❡ 진궁은 즉시 대답했다. ❡ “두 번째.” ❡ 조조는 말문이 막혔다. 진궁이 충분한 고민 끝에 첫 번째를 택할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진궁은 분명하게 말했다. ❡ “장문원을 불러서 내 목을 치라고 하세요.” ❡ 조조는 분노로 몸을 떨고 진궁을 노려보면서 간신히 말했다. ❡ “그래. 마침 지금 허도에 와 있으니까 얼마 안 걸릴 거야.” ❡ 진궁이 자기를 버리고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그 죽음을 괴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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