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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자루의 새로운 기능을 발견하기

— 건안12년 봄 2월, 순우에서 업으로 가는 길에.

교섭에 실패하고 나온 장료는 진궁을 실은 수레로 다가가서 문을 살살 두드렸다. ❡ “선생, 료遼입니다. 잠시 열어도 괜찮겠습니까?” ❡ “이번에도 장군이셨나? 바람이 들게 해 주면 나야 고맙지.” ❡ 장료는 봉인을 뜯고 수레의 뒷문을 열었지만 다음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진궁도 평소의 루틴과 다른 점을 곧 눈치챈 것 같았다. 해가 져서 어두워졌으니 여느 때라면 병사 한 명이 즉시 그를 끌어내어 업고 전사傳舍1에서 정해 준 방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 “무슨 일 있구나?” ❡ “송구하지만…” ❡ “전사에서 나한테 줄 ...

3-3. 흰머리가 없는 까닭

— 건안11년 가을 8월, 순우에서.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조조는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 “공대, 경卿이 올해 몇 살이더라?” ❡ 진궁은 잠시 계산해 보고 대답했다. ❡ “마흔다섯이요.” ❡ 조조는 투덜거렸다. ❡ “그런데 왜 경卿은 흰머리 하나 안 나는 거야? 내가 그 나이였을 땐 꽤 있었는데.” ❡ 진궁을 포로로 잡았을 때 조조는 마흔네 살이었다. 지금 진궁이 그때의 자기보다 나이가 많아졌다니 세월이 빠르기는 하다. ❡ 진궁은 실없는 소리를 했다. ❡ “공公이 무서워서 흰머리도 감히 못 나오고 있나 봐요.” ❡ “그럼 이 검은 머리는 다 고孤를 안 무서워...

3-2. 관찰과 계량에 근거한 예측

— 건안10년 겨울 12월, 업에서.

허도에서 순욱이 불시에 들이닥쳐 진궁을 놀라게 했다면 업의 순유는 미리 기별해서 진궁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었다. 덕분에 진궁은 순유를 기다리는 내내 고통을 받을 수 있었다. ❡ 진궁은 처음과 똑같이 마루에 걸터앉은 채였다. ❡ 순유는 일단 얼굴을 트고 나자 더 친근하게 굴었다. ❡ “오늘은 마루 안에 들여보내 주세요. 선생도 겨울에 찬 데 계시면 발이 시리실 텐데.” ❡ 지난번보다 덜 침착해 보였지만 여전히 다정하고 아마도 끈질길 것이었다. ❡ “이 집 주인은 조 공이신데 포로가 감히 자기 마음대로 거절할 순 없죠....

3-1. 거울을 보는 사이에

— 건안10년 봄 정월, 업에서.

원담을 처형하고 기주를 평정한 후 업으로 돌아온 조조는 진궁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기가 없는 동안 그가 안 하던 짓을 한다는 보고를 받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늘 풀고 있던 머리를 올려서 건으로 싸매고 있었다. ❡ 조조는 진궁을 한참 쳐다보고 헛기침을 하다가 겨우 말을 꺼냈다. ❡ “품고 싶으면 품어도 돼.” ❡ “뭐라고요?” ❡ “뭘 그렇게 놀라? 설마 고孤가 질투할 것 같았어?” ❡ “대체 무슨 소리예요?” ❡ 진궁이 모르는 척 둘러대는 것도 귀여웠으나 조조는 엄격함을 되찾았다. ❡ “고孤한테 차여 놓...

2-8.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

— 건안9년 가을 9월, 업에서.

진궁이 지내는 곳에서 모든 문은 바깥에서만 잠글 수 있게 만들어졌다. 조조가 들어와 있는 동안에는 대문 바깥의 빗장이 풀려 있었다. ❡ 원래부터 조조의 세력하에 있던 허도와 관도에서는 발이 잘린 후 산 채로 조조에게 능욕당하는 옛 반역자의 존재를 다들 알면서 감히 입에 올리지 못했다. 아무도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조조가 방문할 때는 밖에서 지키는 사람을 물려도 되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원씨의 통치를 받다가 이번에 새로 점령된 업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관서 근처에 갑자기 세워진 높은 담장의 정체가 낯설었고 곧 많은 이야깃...

2-7. 끈질긴 사람들

— 건안9년 봄 2월, 업 근처에서.

진궁은 침상에서 배를 바닥에 대고 엎드린 채로 고개를 들어 조조에게 인사했다. 조조가 진궁을 나무랐다. ❡ “공대, 그게 주인을 맞는 태도야?” ❡ 진궁은 찡그리며 대답했다. ❡ “허리가 너무 아파서요.”1 ❡ 그런 변명을 들어줄지 말지는 주인의 마음에 달려 있었다. 위 영공이 총애한 미자하가 먹던 복숭아를 영공에게 주고 영공의 수레를 몰래 탄 것이 처음에는 죄가 되지 않았다가 나중에 죄가 되었던 것처럼.2 그리고 조조의 눈에 진궁은 아직 귀여웠으므로 변명을 들어주기로 했다. ❡ “의학서를 보니까 자주 엎드려 있으래요.”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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