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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매뉴얼 작성자의 정체와 색다른 제안

— 건안12년 가을 8월, 업에서.

진궁이 화분에 심은 호유胡荽1의 잎을 뜯고 자투리 천으로 싸서 품에 넣는 것을 시자가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들이 들이닥쳐 몸수색을 벌였다. 진궁의 겉옷을 풀어 헤치자 곧 풀을 싼 천이 떨어졌다. 병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포박해서 당 아래에 꿇어앉혔다. ❡ 돌로 된 바닥 위로 눌린 진궁의 다리가 저리다 못해 경련을 일으킬 만큼 시간이 지나서야 사공부 별채의 문이 열리고 이쪽으로 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진궁의 앞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조조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길었다. 진궁은 상대의 얼굴을 잠깐 볼 생각으로 고개를...

3-5. 모주의 마지막 식사와 마지막 계책

— 건안12년 봄 2월, 동무양에서.

이번 여정은 여러모로 평소와 달랐다. 일단 장료가 인솔하는 것부터가 예외적인 일이었다. ❡ 전날과는 상황이 정반대였다. 전사傳舍에 도착했을 때 사장舍長이 불편해하기는커녕 최고급 대사代舍1를 내어 주는 일은 처음이었다. 호송 문서를 훑어보는 사장의 얼굴에 비웃음이 비쳤던 듯도 했지만 장료는 자기가 잘못 본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 진궁이 수레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버틴 것도 처음이었다. 물론 그의 저항은 아무 효과도 없었다. 장료는 이곳이 진궁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내지 못했다. 떠올렸다고 해도 그가 왜 수레 안에 처박혀 있으...

3-4. 자루의 새로운 기능을 발견하기

— 건안12년 봄 2월, 순우에서 업으로 가는 길에.

교섭에 실패하고 나온 장료는 진궁을 실은 수레로 다가가서 문을 살살 두드렸다. ❡ “선생, 료遼입니다. 잠시 열어도 괜찮겠습니까?” ❡ “이번에도 장군이셨나? 바람이 들게 해 주면 나야 고맙지.” ❡ 장료는 봉인을 뜯고 수레의 뒷문을 열었지만 다음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진궁도 평소의 루틴과 다른 점을 곧 눈치챈 것 같았다. 해가 져서 어두워졌으니 여느 때라면 병사 한 명이 즉시 그를 끌어내어 업고 전사傳舍1에서 정해 준 방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 “무슨 일 있구나?” ❡ “송구하지만…” ❡ “전사에서 나한테 줄 ...

3-3. 흰머리가 없는 까닭

— 건안11년 가을 8월, 순우에서.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조조는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 “공대, 경卿이 올해 몇 살이더라?” ❡ 진궁은 잠시 계산해 보고 대답했다. ❡ “마흔다섯이요.” ❡ 조조는 투덜거렸다. ❡ “그런데 왜 경卿은 흰머리 하나 안 나는 거야? 내가 그 나이였을 땐 꽤 있었는데.” ❡ 진궁을 포로로 잡았을 때 조조는 마흔네 살이었다. 지금 진궁이 그때의 자기보다 나이가 많아졌다니 세월이 빠르기는 하다. ❡ 진궁은 실없는 소리를 했다. ❡ “공公이 무서워서 흰머리도 감히 못 나오고 있나 봐요.” ❡ “그럼 이 검은 머리는 다 고孤를 안 무서워...

3-2. 관찰과 계량에 근거한 예측

— 건안10년 겨울 12월, 업에서.

허도에서 순욱이 불시에 들이닥쳐 진궁을 놀라게 했다면 업의 순유는 미리 기별해서 진궁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었다. 덕분에 진궁은 순유를 기다리는 내내 고통을 받을 수 있었다. ❡ 진궁은 처음과 똑같이 마루에 걸터앉은 채였다. ❡ 순유는 일단 얼굴을 트고 나자 더 친근하게 굴었다. ❡ “오늘은 마루 안에 들여보내 주세요. 선생도 겨울에 찬 데 계시면 발이 시리실 텐데.” ❡ 지난번보다 덜 침착해 보였지만 여전히 다정하고 아마도 끈질길 것이었다. ❡ “이 집 주인은 조 공이신데 포로가 감히 자기 마음대로 거절할 순 없죠....

3-1. 거울을 보는 사이에

— 건안10년 봄 정월, 업에서.

원담을 처형하고 기주를 평정한 후 업으로 돌아온 조조는 진궁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기가 없는 동안 그가 안 하던 짓을 한다는 보고를 받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늘 풀고 있던 머리를 올려서 건으로 싸매고 있었다. ❡ 조조는 진궁을 한참 쳐다보고 헛기침을 하다가 겨우 말을 꺼냈다. ❡ “품고 싶으면 품어도 돼.” ❡ “뭐라고요?” ❡ “뭘 그렇게 놀라? 설마 고孤가 질투할 것 같았어?” ❡ “대체 무슨 소리예요?” ❡ 진궁이 모르는 척 둘러대는 것도 귀여웠으나 조조는 엄격함을 되찾았다. ❡ “고孤한테 차여 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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