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포스트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보충 2)

— 4년 뒤의 보충

허평군, 곽성군, 왕정군, 탁문군 등 ‘군’이 붙은 여성 이름인명은 당대 유행인가요, 혹은 일종의 존칭처럼 인명 뒤에 ‘군’이 따로 붙은 것인가요? 한 무제의 이부 누이 수성군은 봉호가 확실한 듯한데 왕정군은 이름이 정군이라 해서 헷갈려 여쭤봅니다. 조금 더하자면 이것이 현대 중국 가수 등려군과 관련이 있을까요? ❡ 전에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에서 《한서》의 여성 인명과 《후한서》의 여성 인명을 비교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한서》에서 군君으로 끝나는 인명의 사례를 좀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 탁왕손의 딸 문군文君, ...

원소가 치른 “6년상”의 진상은?

고대 중국에서는 1년이라는 기간을 어떻게 인식했을까요? 우선 나이를 세는 방법을 알아봅시다. 중국에서 언제부터 나이를 만으로 세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한나라 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나라 사람들은 몇 년 전까지의 한국에서처럼 한 살로 태어났고 달력으로 해가 바뀔 때마다 한 살을 먹었습니다. ❡ 왜 이런 방식으로 나이를 세었을까요? 나이를 만으로 세려면 태어난 날짜를 알아야 하고, 또 매년 그 날짜가 언제 돌아오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의 달력 보급 상황을 상상해 보면, 아마도 모든 사람이 자기 생일...

한나라의 똑똑한 여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한나라 때 여사女士의 기준은 어떠했나요? 남성 지식인과 대등하거나 그보다 뛰어난 역량을 증명해야 여사로 인정받았는지, 혹은 그보다 덜해도 ‘여자치고는 똑똑하네’라며 여사로 간주했는지 궁금합니다. ❡ 우선 “여사女士”라는 표현 자체는 한나라 때까지 흔히 쓰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이른 시기에 나온 용례는 《시경·대아·생민지습》 〈기취〉의 마지막 구절인데, 이것은 훌륭한 아내를 주어 남자의 대를 잇게 하겠다는 내용이기 때문에 여성 지식인을 가리킨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 외의 경서나 제자백가 서적에서는 “여사”를 찾을 수 없고, 한...

삼국지 정사와 연의의 삼고초려 비교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7

나본이 역사책 《삼국지》를 소설 《삼국지통속연의》로 개작할 때 특히 많이 각색된 인물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제갈량을 빠뜨릴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에 〈제갈량 vs. 주유, 누가 깃털 부채의 원조인가?〉라는 포스트에서 언급했듯이, 제갈량의 전형적인 아이템으로 통하는 윤건(綸巾)과 우선(羽扇)부터가 연의의 시대에 부여된 설정입니다. ❡ 이런 각색은 연의에서 제갈량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삼고초려 이벤트에서도 나타납니다. 보통 삼고초려라고 하면 유비가 제갈량을 극진히 받들어 모시는 모습을 상상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미지가 연의에서 ...

장창과 반초

— 한나라의 애처가들

한나라 때 장창이 아내의 눈썹을 그려주었다가 다른 신하들의 탄핵을 받은 적이 있다고 압니다. 그 사유는 남자가 화장품 같은 여성적이라고 인식된 물건에 손을 대서인가요, 혹은 아내에게 지나치게 격의 없이 굴어서인가요? 후자라면 동아시아 다른 나라 다른 시대에도 그러했을 것 같은데 부부 사이 ‘과한’ 친밀함이나 애정 행각을 지양해서인가요? ❡ 한나라에서 남자가 화장을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기》 〈영행열전〉에서는 고제 유방의 아들 효혜제 시기 황제의 시종들이 연지와 분을 바르고 화려한 장신구를 착용했다는 이야기...

보요(步搖)라는 머리 장식

마왕퇴 신추 부인의 생전 모습을 재현한 인형을 보면 이마에 드리우는 머리장식을 쓰고 있는데, 이것이 정말 한대에 착용되던 장식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명칭은 무엇인가요? ❡ 마왕퇴한묘 1호 무덤에 묻힌 신추의 머리장식은 보요步搖라고 합니다. 머리에 금속 장식들이 달려 있고, 걸을 때마다 이 장식들이 흔들린다고 해서 보요步搖라고 불렸습니다. ❡ 우선 보요의 존재는 여러 전래문헌에서 확인됩니다. 특히, 《후한서》에서 황후를 비롯한 귀부인들이 의식에 참여할 때 보요로 머리를 장식해야 한다는 규범이 존재하기도 했습니다. ❡ 다음으로 보...

1 6 7 8 9 10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