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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명예롭게 은퇴할 자격이 있다

21세기 한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들, 특히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이들은 3인칭 대명사로 여성을 가리킬 때 ‘그녀’를 피하고 모든 성별을 ‘그’로 통일해서 쓰거나 대명사를 아예 안 쓰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렇다. ❡ 또한 ‘그녀’를 안 쓰는 사람들은 ‘그녀’가 유럽어의 여성대명사(를 수입한 일본어의 彼女)를 번역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므로 애초에 불필요한 말이고 부자연스러운 한국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렇지 않다. ❡ 물론 ‘그녀’라는 대명사는 20세기 이전에 한국어에 없었다. 중국어와 일본어도 3인칭 여성...

“유비 字 현덕”은 근본있는 표현인가? [🔒 무료 미리보기]

삼국지 이야기를 할 때 “유비 현덕”처럼 성과 이름과 자를 나란히 쓰는 것은 일본어의 영향이므로 잘못되었다는 말이 꽤 자주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한나라 때 존재하는 포맷이었고, 문어나 공문서에서 많이 쓰이던 표현이었습니다. 아마도 입말에서 쓸 일은 드물었겠지만, 《한서》 〈유림전〉과 《전론》 〈논문〉 등에서 학자나 관료의 명단을 만들 때 “탁군 탁현 유비 현덕”처럼 출신지, 성, 이름, 자를 나란히 쓴 기록이 확실히 존재합니다. 그러니 최소한 유비가 공식적으로 자신을 처음 소개할 때나 제3자가 유비를 가리킬 때는 “유...

한나라의 음주 풍경 [🔒 무료 미리보기]

한서팸플릿6 《사람들이 일은 게을리 하면서도 먹는 것은 반드시 때에 맞추어 먹습니다》와 삼국지포켓북2 《예의를 버리고 음식을 구하다》에서 서한 시대와 후한 말에 어떤 술이 있었는지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또한 당시의 술이 발효주로서 도수가 높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 한편으로 한때 트위터에서 《기묘한 중국사》를 인용하며 장비가 마신 술이 사실은 ‘호로요이’정도로 도수가 낮았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는데요, 여기에는 《기묘한 중국사》에서 처음부터 독자들이 오해하게끔 서술한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는 장비가 술을 마시는 장...

한대의 수갑과 족쇄의 형상 [🔒 무료 미리보기]

한서팸플릿3 《포박과 감금》에서 다양한 포박 방식을 소개했는데, 당시에는 각각의 방식을 시각적으로 묘사한 자료를 찾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 청나라 때 발간된 한대의 비석·화상석 모음집인 《석색石索》을 보다가 수갑과 족쇄를 찬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여 소개합니다. ❡ 일단 한나라 때의 형구로는 발에 채우는 질桎, 한 손에 채우는 곡梏, 양손에 채우는 공拲이 있었습니다. 이 ‘질’과 ‘공’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단서를 후한 시기 “효당산 화상석” 제7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아래 그림에서는 두 사람이...

현대AU. 비싼 술의 가치

— 세 사람, 20세기 버전.

순욱은 장교가 휠체어에서 포로를 안아 들고 침대로 옮겨 앉히는 동안 테이블에 놓인 술병을 연다. 임무를 마친 장교가 문 옆으로 물러나자 순욱은 침대로 다가가서 포로의 머리에 눌러 씌운 두건을 벗긴다. ❡ 포로 진궁은 숨을 들이쉬자마자 강한 향기에 아찔해졌다. ❡ “……순욱? 순 실장 맞나?” ❡ 이 향의 주인이 세상에 둘일 수 없으니 대답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 “어떻게, 아니, 뭐 하러 왔어?” ❡ 순욱은 건조하게 대답했다. ❡ “술을 좀 먹이려고.” ❡ 진궁은 의아해했다. ❡ “보통은 같이 마시자고 하지 않나?” ❡ ...

외전. Z의 역설

정월 첫째 날 새벽부터 등을 밝히고 종을 울리면서 힘차게 새해를 시작한 조조는 뭔가 허전했다. ❡ 신년을 맞이하면서 빠뜨린 것이 없는지 다시 한번 손가락을 꼽아 가며 점검했다. 하나, 오장을 튼튼하게 해 주는 오신반도 먹었고, 둘, 전염병을 막기 위해 날계란 한 알도 삼켰고, 셋, 악귀가 못 들어오도록 복숭아나무 목판에 신도와 울루를 그려서 문에 거는 것도 큰애들에게 시켰고, 넷, 산조山臊1를 쫓아내기 위해 마당에서 폭죽에 불을 붙이는 것은 작은애들이 더 신났고… ❡ 엄지부터 하나씩 접으면서 검지, 중지, 약지까지 네 가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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