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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대 고증은 창작물의 윤리성을 훼손하는가?

어처구니없게도 “고증”을 빌미로 삼아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창작물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창작물에서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고증을 무시/파괴”하겠다고 선언하는 이도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자와 같은 작품을 만드는 자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줄 필요가 있을까요? 즉, 정말로 온전한 시대 고증을 위해서는 소수자에게 차별과 폭력을 가하는 수밖에 없을까요? 작품의 “윤리적인” 측면을 중시한다면 (그리고 작품의 “윤리성”에 대한 개념이 적당히 합의되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반드시 시대 ...

현대인의 렌즈에서는 난초와 먹 냄새가 나지요

순욱이 머문 곳에서 향기가 났다는 《양양기》의 일화는 언제나 사람의 심금을 울립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향을 상상해 봅니다. 이 상상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난초와 먹인 것 같습니다. 이 두 가지 소재는 고고하고 단아한 고대중남 지식인의 모습을 들여다볼 때 끼는 현대인의 렌즈에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현대인은 당연히 현대인의 렌즈를 끼기 마련입니다. 현대인이 현대인의 렌즈를 끼는 것은 해로운 일도 아니고, 당연히 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내가 렌즈를 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이 어떤...

🍵 차와 문화승리

— 남조와 북조의 자존심 싸움

동아시아, 특히 중국 전통 사회를 상상할 때 사람들이 차(茶)를 마시는 장면은 꼭 들어갑니다. 하지만 한나라를 파는 사람에게 이것은 먼 훗날의 모습일 뿐입니다. 차가 중국 전역에서 기호품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당나라 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당나라 이전 위진남북조 시대까지만 해도 차에 대한 선호도가 지역에 따라 크게 달랐습니다. 특히 남쪽에서는 차를 일상적으로 마시고, 북쪽에서는 차를 매우 싫어했습니다. 이런 갈등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 먼저 소개할 것은 북조 사람이 쓴 《낙양가람기》에 나오는 이야기...

역사/시대 고증은 창작에 필요한 상상력을 방해하는가?

아(雅)는 조조가 향을 싫어해서 금지했다는 《태평어람》의 기록을 몹시 좋아합니다. 그 까닭은 조조가 향을 좋아했다고 상상하기가 아주 쉽기 때문입니다. ❡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겠습니다. 삼국지 이야기에서 조조는 대체로 술과 노래 등 자기 감각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받아들였을 것 같은 캐릭터로 여겨지는 만큼, 후각을 만족시키는 향도 즐겼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조조는 순욱과 함께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그를 각별히 신뢰했고 순욱은 《양양기》에 나오는 향의 일화로 유명합니다. 그러니 조조가 순욱의 영향을 받아서라도 향을 ...

흰색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방법

어렸을 때 학교에서 배우기로 한국어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희다’, ‘하얗다’, ‘허옇다’, ‘하야스름하다’, ‘희끄무레하다‘ 등 하나의 색깔을 가리키는 색채어 형용사가 매우 풍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형용사를 다른 언어로 옮길 수 없다는 번역의 한계 때문에 한국 문학의 아름다움이 세계에 알려지지 못한다는 한탄도 종종 들었습니다. 여기에 동의하고 말고를 떠나서 적어도 20세기에는 이랬습니다. ❡ 하지만 한국어에 한국어만의 특징이 있는 것처럼 모든 언어는 각기 고유한 특징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색깔을 표현하는 ...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보충 1)

— 3년 뒤의 보론

3년 전에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라는 포스트에서 밝혔듯이, 한나라에서는 자(字)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지배계급 여성들만 자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 관비의 딸과 같이 낮은 신분의 여성들도 《한서》에 기재된 대화에서 자로 불리는 사례가 여러 건 있습니다. ❡ 이전까지 자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오해가 널리 퍼져 있던 것이 여성이 역사 속에서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현실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최근 한나라나 삼국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특히 여성 창작자의) 창작물에서 여성 캐릭터를 만들 때 성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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